무비스님─평범한 일상으로의 불교

평범한 일상으로의 불교 /

무비스님

불교는 사람이 살아가는 일 그 자체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이 불교라면 사람이 살아가는 일에 대한 문제를 도외시하면서 달리 불교를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은 바로 인생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훌륭히 살아가는 것이 불교의 삶입니다.

이것은 곧 불교와 우리의 인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떠나서는 어떤 방법으로든 불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절대적인 원칙입니다.

우리가 잠자리에서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세수를 하며 맑은 공기를 한껏 호흡하는 일상적인 일이 바로 불교입니다.

불교는 삶을 떠나서 달리 있을 수 없으며 또 있어서도 안 됩니다.

불교의 여러 가지 교리는 이러한 대원칙 아래에서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불교를 흔히 깨달음의 가르침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불교는 깨달음 이전에 사람이 살아가는 일 그 자체입니다.

중국 임제종의 개조(開祖)이신 임제스님의 말씀을 담은 임제록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도반(법우)들이여, 불교란 따로 특별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평상무사(平常無事)일 뿐이다.

대소변 보고, 옷을 입고, 밥을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고 하는 그것뿐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그것을 보고 웃겠지만 지혜 있는 사람은 훤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불교와 인생이 하나라는 것을 이처럼 명확하게 설명한 말은 다시없을 것입니다.

불교와 인생이 하나임을 증명한 옛 조사스님께서 남기신 예화는 대단히 많습니다.

중국의 조주스님이 남전스님에게 물었습니다.

“도가 무엇입니까?” “평상심이 도다.”또 어떤 이가 동산스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란 무엇입니까?””삼이 3근이다.

(마삼근)”이와 같은 조사스님의 말씀은 만 원짜리 지폐를 들고 “이것은 만원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이치가 너무나 당연해서 오히려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산은 역시 산이고, 물은 역시 물” 일 뿐입니다.그런 것을 모르고 우리는 열심히 밖에다 대고 불교를 묻고 있습니다.

불교교리는 무엇이며, 의식은 어떻게 하는 것이며, 또 부처님은 어떤 분인가 하고 쉴새없이 묻고 또 묻습니다 .여기서 제가 경험한 것을 한 가지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강원공부를 마치고 선방에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송광사 문수전에서 정진하며 관음전 소임을 맡아볼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새벽, 목탁소리를 듣고 깨었더니 밖은 칠흑같은 어둠이었습니다.

비록 그믐이라 해도 산사는 하늘의 밝은 별 때문에 그렇게 어둡지는 않은데 그 날은 유독 어두웠습니다.

예불을 올리려고 관음전을 향했습니다.

늘 다니던 길이라 더듬더듬 걸어갔습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촛불을 켜기 위해 몇 걸음을 옮겼습니다.

탁자 위의 성냥통을 찾아 불을 켰습니다.

그 순간 저는 평생 잊지 못할 참으로 중요한 경험을 했습니다.

칠흑같이 어둡던 법당 안이 갑자기 환히 밝아졌습니다.

도대체 이 밝음이란 어디서 왔을까요? 물론 불을 켜면 주위가 밝아집니다.

그러나 이 밝음은 칠흑같은 어둠 그 자체였다는 것을 확연하게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법당문은 닫혀 있었고 문 틈조차 없었습니다.

불을 켜는 순간 어둠이 문 틈 어디론가 사라진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밝은 빛이 어디에서 비집고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그러면 밝음과 어둠이라고 하는 실체는 무엇일까요? 또한 그 실체는 존재하는 것일까요? 밝음과 어둠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결국 밝음과 어둠은 하나였던 것입니다.흔히 불교 안에서는 둘이 아니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복과 죄가 둘이 아니며, 번뇌와 보리(깨들음)가 둘이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둘이 아니라는 것은 결국 하나임을 말하며, 그것은 확고부동한 진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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