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꿈꾸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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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상 스님- 우리 모두의 공통된 바램 은 ‘행복’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얼마 없어요.
우리들은 늘 힘겨워 하고, 서러워하고, 외로워하고, 또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물론 잠깐 잠깐의 행복이 있기는 하지요.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다시금 곧잘 힘겨움 속으로 빠져드는 것을 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행복이라는 것이 주변 여건에 따른 행복일 뿐, 내 스스로 선택한 행복이 되질 않으니 그것이 문제입니다.
주변의 여건에 따라, 환경에 따라, 인연에 따라 우리 마음은 급격하게 요동을 칩니다.
내 스스로 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조건에 휘둘리면서 산단 말입니다.
이 세상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세상에 노예가 되어 늘 상 휘둘리고 사니 이 얼마나 나약하고 불안해요.
이렇게 살면 행복은 언제까지고 요원합니다.
여건이 좋아지면 잠시 행복했다가 여건이 나빠지면 다시 괴로워진다면 그것이 어떻게 온전한 나의 행복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행복을 밖에서 찾으려 하면 언제 까지고 ‘휘둘리는 행복’ 밖에는 얻지 못합니다.
그런 행복은 늘 그렇듯 불행을 그 이면에 함께 가지고 있기에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행복, 불행 하는 그런 나뉨이 있는 작은 행복 말고, 우리는 온전하고 당당한 내 안에서 거침없이 쏟아져 나오는 ‘온전한 행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나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린 행복하게 살아야 하며, 당당 하고 자유롭게 또 평화롭게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들 삶의 목적이 되어야지 돈 버는 일이며, 사업을 확장하는 일, 명예를 드높이는 일, 권력을 잡는 일, 그런 것 들이 먼저가 되어선 안 됩니다.
그런 일상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예요.
그 속에서도 우리 마음의 평온함이 전제가 되지 않고서는 그 또한 ‘휘둘리는 행복’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돈을 많이 벌면 행복, 못 벌면 불행, 사업 이 잘 되면 행복, 안 되면 불행, 권력을 잡으면 행복, 못 잡으면 불행, 그런 조건에 따른 행복은 완전한 행복이라 할 수 없습니다.
돈에 휘둘리지 않고 돈을 벌어야 하고, 사업에 휘둘리지 않고 사업을 일으켜야 하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권력을 써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듯 돈에 휘둘리지 않아야 돈도 벌 수 있고, 사업에 휘 둘리지 않아야 사업을 확장할 수 있으며,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이라야 권력도 잡을 수 있는 노릇입니다.
휘둘리지 않아야 휘두를 수 있음을, 비워버려야 충만히 채울 수 있음을, 무소유가 전체를 소유한다는 사실을, 마음을 맑게 비운 가운데 한마음 일으킴으로써 마음 내는 대로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삶의 법칙을 우리 삶 속에서 일깨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에 살면서 세상의 도리를 뛰어넘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하나 가지고 행복할 수 있어야지, 조건에 휘둘려 밖에서 행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마음 하나 일으켜 세상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합니다.
마음 내는 대로 삶 속에서 그 무엇이라도 이루어 낼 수 있어야 하고, 행복이며 평화, 자유 그 어떤 것이라도 내 안에서 활짝 꽃피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삶의 도리가 있습니다.
그런 세상사는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그 어떤 삶의 조건이나 환경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속 뜰에 깊은 중심을 잡고 안으로 안으로 모든 일을 자유롭게 해 나갑니다.
지금 저는 어떤 다른 세상의 일이나, 출가한 사람들, 수도자, 성직자들의 초월한 일상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 모두가 행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행복’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삶 속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내면이 늘 평화롭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그 마음 간절하다면 이제 마음으로의 여행을 떠날 준비는 된 것입니다.
누구나 행복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나 평화로움을 꿈꾸고 있으며 자유로움을 꿈꾸고 있다는 점에서 우린 누구나 수행자이며 구도자인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공통된 본업(本業)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