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국스님─사랑하며 오늘을 살면

사랑하며 오늘을 살면

-혜국스님-

우리들의 사는 모습을 보면, 지금 현재는 내 남편 이나 아들딸들에 대해 ‘완전하다’고 생각하며 대 하지 않는 듯 합니다.

늘 마음속으로, ‘지금은 비록 시원찮지만 언젠가는 좀 더 나은 가정이 되겠지’하면서, 다음날을 바라 보며 오늘을 희생시킵니다.

그러나 이것은 행복과 깨달음을 향해 나아가는 불자의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하지만 이 말을 오해하지는 마십시오.

희망을 놓아 버리고 자포자기하라는 말은 절대로 아닙니다.

오히려 운명을 끌고 가라는 것입니다.

운명에 끌려가는 것과 운명을 끌고 가는 것은 한 생각 차이입니다.

향상을 하는 불자는 미래를 사모 하는 이가 아니라, 오늘 현재를 사랑할 줄 아는 사 람입니다.

지금 집안의 누가 아프거나 억울한 일이 닥친 상황일지라도, ‘오늘 내가 이것을 받으려고 이 세상에 왔구나’하면서 이겨나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요, 내일은 돌아올 오늘입니다.

미래나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영원을 잘 사는 길입니다.

옛날 머리는 좋았으나 매우 거만했던 유주창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다른 사람들을 업신 여겼고 무시했습니다.

특히 자신이 잘 아는 내용을 틀리게 이야기할 때는, “그걸 말이라고 해? 그 따위 소리 하지마.”라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살다가 유주창은 죽어 염라대왕을 만나게 되었고, 염라대왕은 판결했습니다.

“너는 조금 좋은 머리를 가졌다고 남들을 깔아뭉개며 살았으니, 그 죄업으로 말로 태어나 남을 태우고 다녀야겠다.” 유주창은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전생이 기억나는 것이었습니다.

유주창은 똑똑한 사람이었다가 말이 된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 계속 계속 ‘히이이잉’ 울었습니다.

한참을 슬피 울다가 심하게 배가 고픈 것을 느낀 유주창은 먹을 것을 찾았습니다.

어미 말의 젖이 심하게 그를 자극하였지만, ‘이름난 집안에 살았 던 내가 어떻게 말 궁둥이 밑으로 들어가 젖을 빨겠는가’ 하면서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배가 너무 고파지자 하는 수 없이 먹었습니다.

점점 자란 말은 마침내 장군을 태운 수레를 끌게 되었고, 장군이 죽고 말도 나이가 들자 거름을 치우는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말로 태어난 것도 억울한데 거름까지 치우게 되다니…’ 화가 난 나머지 유주창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 니다.

자살을 한 것입니다.

다시 유주창을 만난 염라대왕은 호통을 쳤습니다.

“이놈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구나.

말이 되었으면 말이 받아야 할 과보를 다 받아야지.

그것이 싫다고 제멋대로 목숨을 끊다니! 이놈을 똥개로 만들어야겠다.” 똥개로 태어난 유주창은 사람의 똥을 먹으며 연 명해야 했습니다.

‘인간이었을 때는 방귀냄새만 나도 구리다고 난리였는데, 이렇게 똥을 먹으며 살아야 하다니…

에잇, 빌어먹을! 차라리 죽자’ 유주창은 또 죽었고, 다시 염라대왕을 만났습니다.

“이렇게 무책임한 놈을 보았나.

업을 받으라고 보냈으면 받고 와야지.

그래야 더 좋은 몸을 받거나 다른 길로 갈 것이 아니냐? 이놈아, 이제는 손도 발도 없는 뱀이나 되어라.” 마침내 뱀이 되고만 유주창은 단단히 결심했습니다.

‘아, 말과 개의 업보가 싫어 목숨을 끊었더니 점점 더 나쁜 과보를 받는구나.

이번 생에는 자살하지 않고 내 받을 것을 다 받으리라.’ 유주창은 이슬을 받아먹으며 뱀의 몸으로 생존을 위해 열심히 살았습니다.

마침내 수명이 다한 그 뱀은 길을 건너다가 힘이 빠져 수레에 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가 다시 염라대왕 앞으로 갔을 때 염라대왕은 환하게 웃으며 맞아주었습니다.

“오랜만에 네가 받을 빚을 다 받고 왔구나.

이제 빚을 다 받았으니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네가 경험한 일을 세상에 전하도록 하여라.” 다시 사람으로 태어난 유주창은 인과응보의 분명함은 물론이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의 과보를 널리 널리 전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허무맹랑하다며 흘려버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라고 하여 유주창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비록 어려움이 있을지라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떠한 고난도 억울해하거나 속상해하지 말고, 다가오는 모든 액난까지도 사랑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럴 때 진정 내 마음까지 사랑할 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노력도 하지 않고 ‘눈물의 씨앗’이 되는 유행가 같은 사랑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습니다.

흔히들 사랑을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 주는 것’ 또는 ‘서로 주고 받는 것’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사랑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 입니다.

내가 가진 재산에서 얼마를 떼어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 나보다 못한 사람이든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이든 나보다 더 잘난 사람이든 관계가 없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에게 말이나 행동으로 베풀어 주고 마음을 써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렇게 사랑할 때 우리의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행복과 깨달음의 농사를 풍요롭게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진정한 사랑은 내가 나를 사랑 하는 일입니다.

오늘 혹시 내 몸이 많이 아프다면 마음을 바꾸어 보십시오.

‘아, 내가 전생에 어떤 업을 지었기에 이렇게 아픈것인가? 이 몸의 아픔과 마음이 슬픔을 수행으로 바꾸어 내 마음 밭에다 연꽃을 피우리라.

내 몸뚱이가 있을 때 부지런히 마음 농사를 짓고 기도하고 경을 읽고 참선하리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 입니다.

인간으로 태어나기를 작정했을 그때,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있는 염라대왕께 약속을 하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염라대왕님, 금생에는 정말 열심히 노력하여 행복과 깨달음의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제마음의 농사를 잘 지어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철석같이 약속을 해놓고 정작 이 세상에 와서는 딴 일만 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딴 일만하다가는 장애가 되는 업만 쌓아 돌아가게 되고, 쌓은 업이 두터우면 편안히 눈을 감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부디 나 스스로를 사랑하고 내 마음을 사랑 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내 마음 안의 번뇌망상을 ‘부처님’이라는 화두로 삼는 일입니다.

미워하고 원망하고 성내는 마음을 부처님으로 조성해서 부처님으로 바꾸어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금생에 마음공부를 하면서 참으로 자신을 사랑하며 살면 영원히 잘 살 수 있습니다.

기꺼이 받겠다는 자세로 살면 마음 농사를 잘 지을 수 있고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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