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로 내면의 악 항복 받으라
-지광스님-
발심한 사람은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을 것인가의 문제가 『금강경』에 등장한다.
자신을 항복받는다는 것은 자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항복받지 않으면 남을 제도하기가 어렵다.
자신을 이기고 통제할 수 없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다스릴 수 있겠는가.
자기를 이기는 사람이란 결국 탐욕을 이기고 이기심을 이기는 사람이다.
이기적 욕망이 모든 재앙의 불씨임을 아는 사람은 우주의 법칙을 바로 아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몸은 물거품이요 번뇌를 독사처럼 아는 사람은 만유가 허깨비라는 것을 안다.
이기적 자신을 항복받고 통제한다는 것은 탐욕의 악마, 독심의 악마를 항복받고 제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지고 보면 우리의 내면세계는 끊임없는 전쟁상태이다.
‘부처님의 나’와 ‘악마의 나’가 끊임없이 싸운다.
그 싸움은 끊일 날이 없다.
부처님께서도 성불의 마지막 순간까지 악마와 싸우셨다.
우리는 바깥세계의 악마와도 싸우지만 내면의 악마와 더욱 더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우리가 악마를 끊임없이 항복받으려면 끝없는 수행을 감행해야만 한다.
기도정진, 참선정진 등이 망상의 악마를 항복받을 수 있는 비결이다.
우리는 진실로 매 순간 악마와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순간이라도 기도하고 정진하지 않으면 악마는 어느 틈에 나를 공격해 들어온다.
내면의 악마는 아상이요, 인상이요, 중생상, 수자상이며 독심이고, 이기심이다.
무아를 깨달은 사람은 항상 나를 버리고 남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남을 행복케 하고 남을 살리기에 결국 자기 역시 행복해진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서 가장 빨리 망하는 사람이란 나만 잘되기를 바라는 사람이라 하셨다.
나를 버리고 남을 잘되게 하는 사람에게 복된 미래가 열린다.
행복의 나라가 열린다.
세상이 고통의 바다인 이유 그리고 부처님 나라가 행복과 행운의 바다인 이유는 분명하다.
중생들의 세계는 하나같이 자기만 아는 탐욕과 독심들의 노예들일 뿐이고 부처님 나라는 나를 버린 무아의 마음뿐인 그래서 오로지 남을 위하는 마음의 세계이다.
한 생각의 차이가 고통의 바다와 행운의 바다를 갈라놓는다.
끊임없이 갈고 닦아 이기심의 악마를 퇴치하는 가운데 행복의 나라가 열리고, 갈고 닦지 않은 인간에게 번뇌의 악마가 끊임없이 달려드는 것이다.
수행자에게 항상 영광의 나라가, 행복과 열반의 나라가 열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수행을 통해 부처님의 무한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기적 마음을 항복받는 것이 행복의 지름길이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결국 참 자기를 잃으면 행복도 없다.
『금강경』에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을 말씀하신 것은 내면의 악마와 치열하게 싸워 이길 수 있는 진정 탁월한 전략이라 할 수 있다.
결국 세상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이며 수행이 문제인 것이다.
이 세상을 살며 정녕 우리가 닦아야만 하는 가르침은 부처님 말씀대로 무아의 마음인 사무량심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 이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가르쳐야 합니까?”라는 아난의 질문에 “세상 사람들을 무아의 마음인 사무량심으로 대하고 사무량심을 가르쳐라.
무아의 마음 사무량심을 베풀면 온 세상을 두루 평안케 하리라”고 하셨다.
이 세상을 고통의 바다로 살 것인가 행운과 행복이 넘치는 바다로 살 것인가는 그대의 마음 한 생각에 달려있다.
항상 남을 우선시 하는 삶을 살라.
우선 남을 행복케 하라.
나를 먼저 생각지 말라.
그 마음이 악마이다.
남을 돕는 것이 나를 돕는 길, 살리는 길이다.
누구를 돕는 것이 아니고 나를 돕는 것이고 그 마음 가운데 부처님의 한없는 가피가 함께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