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스님─참 나를 밝히는 부처님의 가르침(1)

참 나를 밝히는 부처님의 가르침(1) 보성큰스님(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참된 ‘나’가 참부처님 매년 음력 4월이 되면 어김없이 ‘부처님 오신 날’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이 날이 다가오면 많은 불자들이 부처님의 탄생을 기리고, 불자로서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집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사방으로 일곱 발자 국씩 걸으면서, 한 손으로는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외쳤습니다.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나 하나 홀로 높네 끝없는 나고 죽음 이에서 다하리라.

이 생에서 모든 사람과 천인을 이익되게 하리.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무량생사 어금진의(無量生死 於今盡矣) 차생이익 일체인천(此生利益 一切人天) 이 게송을 통하여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신 뜻’ 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 게송의 참뜻을 모르는 이들은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나 하나 홀로 높다.

(天上天下 唯我獨尊)라는 구절에 대해 “그토록 건방진 말 이 어디에 있느냐”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이 선언이야말로 누구에게나 통하는 보편타당성을 지닌 말씀이요, 바로 우리를 깨우치고자 하신 말씀입니다.

곧, ‘나 하나 홀로 높다’는 말씀 속의 ‘나’는 어느 한 개인 의 ‘나’가 아니라 모든 이들이 다 갖추고 있는 ‘참된 나’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나’야말로 하늘 위 아래를 통털어 가장 높고 가장 존귀한 것임을 천명한 것이요, ‘참된 나’를 찾아 부처를 이룰 때 가장 높고 위대한 개인이 된다는 것을 밝힌 것입니다.

그럼 ‘참된 나’란 무엇인가? 바로 참된 부처님입니다.

먼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내가 어떠한 부처님 을 어떻게 모시고 있는가’를.

대부분의 불자들은 나름대로 부처님을 모셨다고 생각합니다.

과연 어떠한 부처님을 모셨습니까? 법당에 계신 등신불을 모셨습니까? 복을 주는 관세음보살, 영가를 천도해주는 지장 보살을 모셨습니까? 물론 그와같은 불보살님을 모시는 것은 불자의 당연한 도리 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이나 대보살님들의 근본 뜻에 비추어 본다면 그 어떤 존재보다도 ‘참된 나’라는 부처님을 잘 모셔 야 합니다.

참된 나! 그 ‘참된 나’라는 부처님은 잠시도 ‘나’와 떨어진 적이 없습니다.

매일 밤마다 내가 모시고 자는 부처님이요, 아침마다 언제나 함께 일어나 같이 움직이는 부처님입니다.

이 부처님이야말로 우리가 지성으로 모셔야 할 으뜸가는 부처님입니다.

우리는 누구 할 것 없이 ‘참된 나’라는 으뜸가는 부처님과 언제나 함께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 부처님을 어떻게 모셔야 할까요? 기쁜 마음으로 즐겁 게 모셔야할까요? 얼굴을 찌푸려가면서 괴롭게 모셔야 할까요? 당연히 즐겁게 잘 모시고 싶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참된 나’라는 부처님을 모시기 보다는 ‘나 밖의 부처님’ 모시기를 더 좋아합니다.

‘참된 나’를 찾고자 하는 것이 으뜸가는 부처님을 가장 잘 모시는 방법인데도, ‘참된 나’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합니다.

‘참된 나’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할 때 우리는 죽은 사람이 되고, ‘참된 나’를 찾는 일을 부지런히 할 때 우리는 산 사람이 됩 니다.

‘참된 나’와 더불어 즐거운 생각을 가질 때는 즐거운 사 람이 되고, 괴로운 생각을 가질 때는 괴로운 사람이 됩니다.

복되게 생각할 때는 복된 사람이 되고, 가난하게 생각할 때는 비참한 사람이 됩니다.

사월 초파일은 석가모니부처님의 생일이지만, 우리가 잘 때 함께 자고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 함께 움직이는 그 부처님은 매일 매일이 생일입니다.

날마다 생일입니다.

과연 날마다 생일인 그 부처님을 어떻게 모시렵니까? 즐겁고 복되게 모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참된 나’라는 부처님을 잘 모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도 먼저 ‘참된 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잘 모실 수 있습니다.

‘참된 나’라는 부처님은 우리의 속을 환히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병을 치유하는 절대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설법을 모은 [유교경(遺敎經)]에는 다음과 같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병을 알아 약을 주나니 먹고 먹지 않는 것은 의사의 허물이 아니요, 또 좋은 길잡이와 같아 도로써 사람을 인도하나니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은 길잡이의 허물이 아니니라.

아여양의 지병설약(我如良醫 知病設藥) 복여불복 비의구야(服輿不服 非醫咎也) 우여선도 도인선도(又如善導 道人善導) 문지불행 비도과야(聞之不行 非導過也) 이것은 단순한 부처님의 설법이 아닙니다.

잘 때 함께자고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 언제나 함께 움직이는 ‘참된 나’의 음성입니다.

가만히 귀 기울여 보십시오.

지금의’나’에게 이 ‘참된 나’의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까? 아마도 현재의 병에 너무 집착을 하고 있기 때문에 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정녕 지금의 우리는 나름대로의 병에 걸려 있고 길을 몰라 헤매고 있습니다.

몸이 아픈 병을 비롯하여 돈이 벌리지 않는 병, 자식이 공부를 못하는 병, 욕심대로 되지 않는 병, 재앙이 많은 병 등 차근차근 따지고 보면 병에 걸려 있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각자가 가지고 있는 병을 치료할 방법을 알고 있는가? 물론 아닙니다.

병을 치료할 길을 모릅니다.

그래서 끝없이 헤매고, 마침내는 허무하게 죽어 갑니다.

다행히 불교를 믿는 우리 불자들은 큰 길잡이이신 부처님께 그 길을 묻습니다.

“부처님! 저는 이러한 병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 병을 벗어나 병 없는 삶을 살게 하소서.

” 그러나 법당에 계신 대부분의 부처님은 대답이 없습니다.

그럼 누가 가장 빨리 답을 주는가? 바로 ‘참된 나’라는 부처님 입니다.

밤에 잘 때 함께 자고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그 부처님은 병에 걸리지 않습니다.

배고픈 부처도 아니요 돈이 없어 궁한 부처도 아닙니다.

‘참된 나’의 부처님은 어두운 밤에도 밝게 가는 부처입니다.

그 부처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바른 길을 일러줍니다.

병을 낫게 하는 방법을 다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된 나’의 음성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바른 길을 찾아 병으로부터 해탈할 수 있습니다.

잘 때 함께 자고 일어날 때 함께 일어나는 ‘참된 나’라는 부처님은 훌륭한 의사와 같아서 환자를 잘 진찰하여 병을 낫게 해 줄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그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자비심입니다.

모든 병을 낫게 해 주는 자비심은 언제나 우리 속에 있습니다.

‘참된 나’의 작용인 자비심은 어느 때고 우리의 병을 고쳐 줄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따라서 속에 있는 자비심을 굳게 믿고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그 어떠한 병도 치료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계속) -월간 [법공양] 5월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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