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은 업은 과보 면하지 못한다
-지안스님-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불심천자(佛心天子)로 알려졌던 임금이었다.
그가 재위하는 동안에 불교를 크게 장려하였다.
나라 안에 많은 사원을 짓게 하고 스님들을 득도케 했으며
임금이 손수 절에 시주를 하는 등 많은 불사를 도와준 왕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불심이 깊었던 왕이었지만
그는 몇몇 고승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한 적이 있었다.
그는 가끔 궁중에 고승들을 청해
법문을 듣기도 하고 담론을 나누기도 했다.
한 번은 합두대사를 궁중으로 모셔오게 했다.
왕명을 받고 간 신하가 합두 대사를 안내해 와
대전 문 밖에서 아뢰었다.
“폐하, 합두대사를 모셔 왔습니다.”
이때 무제는 다른 신하 한 사람과
바둑을 두느라 정신이 팔려 있었다.
바둑에 열중한 무제는 밖에서 아뢰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바둑판을 응시하다가
상대의 돌을 잡겠다는 뜻에서 “죽여라”하고 말했다.
문 밖에서 이 말을 들은 신하는 엉뚱하게
합두대사를 죽이라는 말로 알아듣고 궁전 뒤뜰로 데리고 가
무장(武將)을 시켜 합두대사를 참형해 버렸다.
얼마 후에 바둑을 끝낸 무제는
합두대사를 어디에 모셨느냐고 물었다.
신하가 아뢰기를 죽이라 하여
뒤뜰로 데려가 무장을 시켜 참했다고 말했다.
무제는 크게 놀라 당황하다가
대사가 참수를 당하면서 무슨 말을 하드냐고 물었다.
“내가 과거세에 지렁이 한 마리를 잘못 죽인 죄로
오늘 그 과보를 받는구나.”
합두대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말은 들은 무제는 대성통곡을 하였다.
고승을 모셔오게 하고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로 참수를 하게 한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건 뒤에는 이런 이야기도 첨가되어 전해진다.
합두 대사가 과거 생에 어린 사미승이 되어
호미로 땅을 파헤치다가 지렁이를 한 마리 죽인 일이 있었다.
이때 맺어진 원한이 후생으로 넘어와
그 과보를 받느라고
궁중에 불려와 어이없이 죽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설화에는 지어 놓은 정업(定業)은
과보 면하지 못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법구경)에도 다음과 같은 말이 설해져 있다.
“지어 놓은 업은 백 천겁이 지나더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假使百千劫 所作業不亡).
인연이 만나질 때 과보를 다시 받게 된다
(因緣會遇時 果報還自受).”
또 무제는 달마스님과도 만났다.
달마스님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들어온 때가 무제 때였다.
달마스님을 만난 무제는
자신이 불교를 장려한 치적을 은근히 자랑하고 싶어했다.
“짐이 이 나라에 불교 발전을 위해서 많은 애를 쓰고 있소.
내가 복이나 공덕을 지은 것이 있는 것이오?”
“없습니다.”
달마스님은 아무 공덕이 없다고 대답했다.
왕의 안전에서 제일의제(第一義諦) 법문을 설하여
공덕이 없다고 말해버린 것이다.
덕담을 해도 모자랄 판에 너무 냉정한 말을 했다고 할까?
어쨌든 달마스님의 눈에는 무제의 근기가 성숙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중에 무제는 이때의 일을 두고 탄식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슬프다.
보고도 보지 못했고 만나도 만나지를 못했으니
그때 일 이제 와서 한이 됨이 그지없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