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상스님─ 대인관계의 시작

대인관계의 시작 /

법상스님

대인관계의 핵심, 그것은 바로 나를 활짝 열어 보이는 데 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깊은 관계는 시작될 수 있지만, 여전히 나를 숨기려 하고, 치장하려 하고, 모든 것을 보여 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그대의 모든 관계는 피상적일 수 밖에 없다.

피상적인 관계를 맺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즐거움이 아닌 부담이고 괴로움이다.

그 사람 앞에서는 끊임없이 연극을 해야 한다.

연극에서 실수는 용납될 수 없다.

실수하지 않으려면 계속해서 힘을 주고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

그런 관계는 자연스럽지 못하다.

억지스럽고 에너지만 끊임없이 낭비 될 뿐이다.

겉으로는 웃고 있을 지 몰라도 그 깊은 속에서는 웃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린 언제나 습관처럼 세상을 향해 웃고는 있지만 과연 그 웃음이 진정성을 띈 것인가.

존재 깊은 곳에서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자연스레 웃는 것인가.

자연스러운 관계란 모든 것을 다 드러낼 수 있는 관계다.

내 모든 것을 드러내, 하나도 감추지 않았을 때 비로소 자유롭다.

상대도 나도 마치 혼자 있는 것 처럼 편안하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런 깊은 관계를 맺기를 의도적으로

원하지 않는다.

피상적이고, 즉흥적이며, 치고 빠지기 식의 표면적인 만남만이 있을 뿐, 자비와 사랑이 바탕 된 깊은 관계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 연유는 바로 아상 때문이다.

‘나다’하는 상이 있으면 나를 좀 더 그럴싸하게 포장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나쁜 부분을 감춰야 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기 보다는 잘 치장된, 잘 포장된 나를

보여야만 인정받기 쉽다.

그런 온갖 종류의 화려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고 가면과 가면이 마주보며 표피적인 대화와 가벼운 농담, 혹은 때때로 육체적이고 욕망적인 만남으로 외로움을 달래는 흔들리는 사회, 희뿌연 거리, 텅 빈 존재감과 관계들을 우린 얼마나 자주 목격하게 되는가.

자신이 부족한 존재임을, 많은 문제를 가진 사람임을 겸손한 마음으로 세상에 드러내라.

그렇게 나를 발가벗기고 상대 앞에 투명하게 서 보라.

꽉꽉 동여매고,

잔뜩 껴입고 있을 때 우린 세상을 향해 사기행각을 벌이고 있는 것과 다름 없다.

사기꾼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걱정스럽다.

행각이 탈로날까 늘 노심초사다.

그래서 우리 마음이

늘 평안하지를 못하고 근심걱정에 시달리는 것은 아닌가.

좀 더 깊이 들어가 조금 더 투명하게 다가서라.

드러내고 나면 모든 관계는

옹달샘처럼 투명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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