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광스님─괴롭기에 고통스럽기에 가치가 있다(2)

괴롭기에 고통스럽기에 가치가 있다(2) 능인선원 주지

지광스님

4.

‘참회’는 중대한 스트레스 해소법 모든 종교에서는 참회하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회개(悔改)하십시오.’ 이렇게 얘기하고 또 가톨릭에서는 ‘고해성사(告解聖事)한다’고 하고 불교에서는 ‘참회( 懺悔)한다’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 제일 참회를 안 하는 종교인이 불교인들 같습니다.

그들은 수요일 날도 가고 일 주일에 몇 번씩 가니까 그만큼 마음이 맑고 깨끗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리는 둘째 쳐놓고 불교인들은 절에 잘 오지 않습니다.

참회라는 시스템에 익숙하지가 않은 거지요.

불교가 힘이 없는 것입니다.

스님들도 그렇고 불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구 문명이 계속해서 이 동양을 휩쓸고 있는 것 가운데 하나로 기독교나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끊임없이 인간의 마음을 고해시키고 회개시키는 시스템’이 비교적 우리의 삶에 밀착되어 있습니다.

불교는 시대에 뒤져 있습니다.

뭔가 앙금이 쌓여 있는 걸 녹여 내려야 되는데 그런 녹여 내리는 시스템에 익숙하지가 않으니까 불교가 힘이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냉정하게 따지면 부처님 말씀이라도 듣고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아! 그렇구나.’ ‘그래, 내가 뭘 잘못했구나.’ 이렇게 안다는 것만 하더라도 이것이 자기가 자기를 구제하는 큰 비결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러분이 법당에 나오지 않는 것이 사실은 손해입니다.

교회에 가지 않고 성당에 가지 않는 걸 그 사람들은 큰 죄 짓는 걸로 알고 또 십일조 같은 것 안 내는 것도 큰 죄 짓는 걸로 생각합니다.

자기의 의무를 안 하니까요.

기독교나 가톨릭 같은 종교가 힘을 쓰는 것이 그래서 그렇습니다.

생활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거든요.

여러분이 법당에 나오시고, 절하시고, 백팔참회(百八懺悔)하고 이렇게 매일매일마다 하는 것이 대단히 중대한 스트레스 해소법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친구들이 있기 때문에 제가 많이 물어봅니다.

사람들이 신경질 부리고 짜증내고 화내고 할 때 이런 것을 치료하기 위해서 대체로 세 가지를 주문한다고 합니다.

그와 같은 정신적인 갈등의 유발 요인이 많은 사람에게 제일 처음에 뭐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참으라고 합니다.

두 번째는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다음에 세 번째로는 다른 행위로 마음을 돌리라고 합니다.

세 가지를 항상 입버릇처럼 하는 것입니다.

“참으십시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다른 행위로 마음을 돌리십시오.” 심지어는 “성질나는 걸 잊어버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의사들이 하는 치료법이니까 원용( 援用) 하십시오.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스트레스가 잘 해소되겠습니까? 신경질 같은 것이 풀리겠습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잘 안 되면 약을 주고 신경을 막 죽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이렇게 일요일 날 법당에 나오시고 하면서 인격 수련을 위해서 노력해야 됩니다.

이 딱딱한 의자에 앉는 것보다 자동차 푹신푹신한데 앉으면 자동차가 튀어도 안 아프지 않습니까? 자동차에는 쿠션이 있으니까요.

쇼크 충격에 어떤 그런 쿠션 역할을 하는, 즉 마음에 여유를 갖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슨 종교라는 것이 우리의 삶과 유리된 세계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매일매일의 삶 가운데 자기 기도하고 인격을 배양하는 것, 이것이 전부다 약입니다.

종교라는 말을 내려 놓고라도 언제 어느 곳에서건 인격을 도야하고 마음을 수련하고 그런 가운데서 뭔가 내 마음 가운데 쇼크 즉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는 그러한 자세가 중요합니다.

5.

기초를 다져라 성공을 위해서는 기초공사가 필요합니다.

기초 공사가 되어 있지 않으면 결국 허물어집니다.

인생을 무엇에다 많이 비교합니까? “인생은 마라톤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영원을 가는 마라톤 주자들입니다.

영원을 가려면 강한 인내력을 키워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대인(大忍),’ 큰 인내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에 중요한 것은 세상을 살아가면서 잘 적응을 해야 됩니다.

‘보현행을 하라.’ 우리가 예불할 때도 ‘대지문수사리보살 대행보현보살 대비관세음보살 대원본존지장보살(大智文殊舍利菩薩 大行普賢菩薩 大悲觀世音菩薩 大願本尊地藏菩薩 )’이 있지만 잘 적응을 할 수 있어야 됩니다.

잘 적응을 하려면 가장 필요한 마음이 ‘사랑의 마음’입니다.

‘대인(大忍)’, ‘대비심( 大悲心)’ 이게 모두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이나 ‘자비’ 같은 것이 종교에나 나오는 얘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 다음에 부처님 말씀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개체로 나오니까 원천적으로 고독하다고 합니다.

부부가 같이 살아도 제가 상담을 해 보면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고독하다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고독할 때에는 ‘대신( 大信)’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실 종교가 약입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비교적 수명이 길다고 나옵니다.

열 마리 정도의 모르모트를 가지고 두 부류로 나눠서 실험을 했습니다.

A그룹의 모르모트하고 B그룹의 모르모트에게 모두 살모사의 독을 집어넣었습니다.

그리고 A그룹의 모르모트들에게 “너는 안 죽는다.

너는 살 수 있어.

알았지? 너는 분명히 살아.

알았어? 산단 말이야.” 이렇게 계속 암시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B그룹의 생쥐들에게는 전혀 암시를 주지 않았더니 B그룹의 생쥐들은 일찍 죽어버렸습니다.

그런데 A 그룹에 있는 다섯 마리 가운데 두 마리는 얼마 정도 더 살고 세 마리는 꿋꿋하게 계속 상당 기간 살더라는 것입니다.

살모사 독을 집어넣었는데도 말입니다.

그게 한두 번 실험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데이터에 나와 있습니다.

매일매일 살다 보면 스트레스가 쌓이고 독이 쌓입니다.

스트레스가 독이기 때문입니다.

남이 나에게 괴로움을 가해오면 내가 쿠션이 있어 가지고 잘 받아들여야 합니다.

야구선수들이 어떻게 합니까? 공을 받을 때 그냥 ‘탁’ 받던가요? ‘솨악’ 이렇게 받습니다.

그럼 충격이 덜한 겁니다.

그러니까 누가 막 스트레스를 가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대인심( 大忍心)으로, 대비심(大悲心)으로, 대신심(大信心)으로 이렇게 받아들이면 쇼크가 덜하게 됩니다.

6.

매일 기도하라 여러분, 매일 아침 저녁으로 기도해 보십시오.

모르모트에게 암시를 주었더니 살모사 독도 해독되는 판인데 사람들이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 기도 하고 저녁에 자기 전에 또 기도하고 하면 얼마나 많은 독이 해소되겠습니까? 학자들의 얘기에 따르면 우리 몸의 세포가 줄잡아 일천 조가 넘는다고 합니다.

일천 조가 넘는 세포를 통괄하는 것이 마음 아닙니까?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대신심(大信心)’ 즉 마음을 조아리고 부지런히 참회하는 마음, 기도하는 마음으로 산다고 한다면 마음의 독과 몸의 독이 많이 해독될 것입니다.

법당에 못 나오시면 집에서라도 하십시오.

간단하지 않습니까? 천수경 독경하시고, 염주 잡고 108배 한 번 하시고, 아니 108배 다 못하면 반만 해도 좋습니다.

그리고 위대한 선지식들의 발원문이 있습니다.

발원문을 만들어 가지고 세 번 정도 봉독하십시오.

그 다음에 반야심경을 읽으면 그게 기도입니다.

그건 부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낮에 다닐 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답답할 때에도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하십시오.

영국의 어느 연구팀에서 연구를 했는데 에이즈 걸린 사람에게 종교를 가지게 하고 계속 기도를 시켰더니 에이즈 걸린 지가 20년 가까이 되었는데 안 죽고 있더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마음의 힘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불교에서는 ‘번뇌(煩惱)’, ‘망상(妄想)’ 이런 것을 대단히 배격하고 있습니다.

‘망상’ 즉 ‘쓸데없는 생각’이 문젯거리 아닙니까? 가정, 직장, 법당 이 세 군데 이외에는 가지 마십시오.

쓸데없는 곳에 가면 쓸데없는 말을 하게 되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자꾸 망상을 피우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절은 왜 만드셨겠습니까? 자리가 사람을 만듭니다.

가정을 법당으로 만든다면 이것도 겁나는 일입니다.

‘도량청정무하예(道場淸淨無瑕穢) 삼보천룡강차지(三寶天龍降此地)’ 그 집에 복이 막 쏟아집니다.

그리고 꼭 당부 드리겠는데 애를 지우지 마십시오.

‘영장(靈障)’이라고 하는데 영들의 장애가 있습니다.

그러면 아이들도, 남편의 앞길도 지장이 많습니다.

우리가 다 스트레스의 희생자들이기 때문에 아이를 지우면 보이지 않는 영혼들의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스트레스를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습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스트레스의 희생자이고 아버지도 희생자입니다.

또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스트레스에 희생되고 영가들은 영가들대로 스트레스의 희생자입니다.

이 세상을 살다가 떠난 영혼들이 있다고 칩시다.

그들도 이 세상에 살 때 스트레스 속에 찌들리다가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죽었다고 그들의 마음 속에 스트레스가 다 해소되겠습니까? 마음 가운데 고통과 갈등이 해소되겠습니까? 그들과 더불어 우리가 정성스러운 마음으로 뭔가 같이 노력하고 살자는 것이 제사의 형태로 나타나고 우란분재로 나타나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가정을 도량으로 만들고 아름다운 보금자리로 만드십시오.

그리고 일 주일에 한 번씩 법당에 와서 마음을 씻어내고 스트레스 해소처로 만드십시오.

스트레스 해소책을 자기가 잘 도모하지 않으면 가치로운 인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종교가 필요한 것이고 수행이 필요한 것이고 도 닦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

우리는 누구나 다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고통스럽고 괴롭기 때문에 그것을 잘 극복할 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법당에 열심히 나오고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기도해 보십시오.

그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아주 좋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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