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덕스님─감사가 운명을 바꾼다

감사가 운명을 바꾼다 /

광덕스님

여러분께서는 부처님 전에 호법을 발원하셨는데 호법 발원이 바로 부처님의 감로법을 이 땅에 영원히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감로의 법이라는 것은 글자로는 ‘달 감(甘)’자 ‘이슬 로(露)’자의 ‘단 이슬’이라는 표현으로서 은혜를 베푼다는 뜻으로도 해석합니다마는 원래 감로라는 뜻은 범어로 아므리따(amrta), 즉 불사(不死)의 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불사, 죽지 않는 법이라는 뜻입니다.

불법은 죽지 않는 법을 가르치는 법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이 세간에 모든 것이 허물어져도 허물어지지 않는 참된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귀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우리가 보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그 모두는 형상이 있는 것이고 마침내는 허물어지는 것입니다.

형상이 있어서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든 내 생각 속에 그림자처럼 던져진 것이든 어떠한 고결한 사상이든 치밀한 이론이든 그 모두는 환으로서 꼭두각시와 같이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것이고 조만간 스러지는 것입니다.

죽어도 죽지 않는 도리

부처님의 법이 이 세간에서 왜 뛰어나느냐 하면 불사의 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죽지 않는 법입니다.

옛 스님들 가운데서 죽지 않는 도리를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것을 믿으신 분들, 또 믿고 그렇게 닦으신 분들, 그와 같이 하셔서 마침내는 이 땅 우리 범부의 눈으로 봐서 그 육체가 사라진 듯이 보여도 본인은 사라짐 없이 ‘나는 간다’ 하고 그냥 어느 길을 떠나는 것처럼 가시는 분도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것 중에 어느 스님인가 기억은 안 납니다마는 제자들을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나는 그만 가겠다.” 하고 작별인사를 한 후 행장채비를 하고 집에서 한 걸음 문밖에 나가시더니 선 채로 가버리셨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몸뚱이가 전부인 줄 알고 이 눈으로 보는 세상이 전부인 줄 알기 때문에 이 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겉껍데기만 보는 것입니다.

우리 몸 겉모습 앞뒤만 거울에 비춰보고 내 몸만 보고 있는 것이지 내 마음 내 생명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보지 못하지만 없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어서 다친 몸도 새로워지고 작은 몸도 커지고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서 대응할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있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있습니다.

눈을 뜨면 그것을 본다는 것입니다.

우리 불자들이 수승하고 장하다고 하는 것은 이 불사(不死)의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 불사의 법이 바로 무한대 원만구족한 진리로서 내 생명에 깃들어 있는 것을 믿기 때문에 불법을 배우고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제자들이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서도 가장 수승한 법을 배운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 성자인가?

저는 오늘 형제들이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고 예참을 드리고 독경하고 발원하는 것을 다 들으면서 이런 느낌이 듭니다.

성자가 누구냐? 여기 모인 불자들, 이 분들이 성자가 아니고 누가 성자이겠습니까?

아므리따, 죽지 않는 법, 이 땅 전체가 허물어지고, 이 몸 모두가 허물어지고,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없어지지 않는 진리가 있는 것을 알아서 그 진리를 스스로 믿고 스스로 배울 뿐만 아니라 온누리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이 세상에 그 법이 오래오래 가서 우리의 후대 뒷날 또 그 뒷날까지라도 이 땅에 태어나는 사람들에게 불법, 이 불멸의 법, 죽지 않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하는 여러분, 이 원을 세워서 이렇게 닦는 바로 여러분들이 성자가 아니고 누가 성자이겠습니까?

대개 사람들은 눈 앞에 보이는 것만 가지고 계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마는 부처님 법은 진리를 중심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형제들이 바로 호법발원을 해서 부처님 감로의 법, 부처님의 불사의 법, 이 법이 이 땅에 오래 머물고, 이 땅에 영원하도록 원을 세워서 닦고, 정성스러운 정진을 바쳐서 이 불사를 뒷받침하고 그렇게 원을 가지고 정진하시는 여러분들이 성자가 아니고 누구냐 하는 것입니다.

제 마음 가운데서 여러분이 정말 성스러운 분들이라는 생각을 거듭 가지면서 감사한 생각을 갖습니다.

부처님의 한량없는 공덕은 어디에서 오는가 부처님의 감로법이 이 땅에 영원히 머물고 이 땅 위에 영원히 불법광명이 충만할 것을 발원하신 분들이 여기 모여서 크신 원 세우고 일관해서 이 발원을 관철하시는 여러분에게 거듭 경의를 드립니다.

우리와 부처님 경계를 통하게 하는 길, 부처님의 은혜와 위신력이 아무리 넘쳐 흘러도 자비가 구름같이 항상 인다 하더라도 우리들이 눈을 감고 벽을 치고 있어서는 부처님의 한량없는 그 공덕을 입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과 부처님과 사이에 통로를 여는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원만공덕성을 자신 속에서 관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불광이 문을 여는 날부터 시작한 말이기 때문에 불광 형제들 모두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얘기입니다마는 실지로 부처님의 무한공덕성을 마음에서 관한다는 것이 수행에 가장 기초가 되는 대목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부처님의 무한공덕성이 내 생명에 빛나고 있다는 사실을 관하고 그것을 알고 그것을 확실히 믿고 그 다음에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송하라고 그럽니다.

어떤 기도를 하든지 무슨 기도를 하든지 부처님의 무한공덕성이 자기 생명 가운데서 지금 빛나고 있다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관해야 부처님과 우리의 사이에 통로, 즉 문을 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하반야바라밀을 일심으로 염송해서, 무념이 되어서 정말 일심이 되었을 때 그 가운데 있는 벽이 무너져 버립니다.

저는 우리 불광 형제들이 이것을 잘 아셔서 어느 때나 이 불광 반야바라밀 제 일조를 잊지 않고 수행해 주시기를 부탁하고 그렇게 하시는 것으로 믿습니다.

감사가 운명을 바꾼다

진덕화 보살님의 수기에 보면 그런 얘기가 나옵니다.

불법을 알고 다닌 지가 10년이 되어도 불광을 만나기 전에는 참으로 불법을 몰랐고, 특히 감사할 줄 몰랐고, 부처님께 기원만 드릴 줄 알았지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몰랐다고 했습니다.

몸에 병이 나서 지내던 중 불광법회 가족모임 하는 데 참석했다가 거기서 법문을 듣고 불광법회를 처음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법회는 실지로 가기 전날 꿈속에서 50여 명이 모여서 법회를 하고 어떤 낯선 스님이 법문을 하시는 것을 들었는데 그 다음 날 가보니까 바로 그 법회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마하반야바라밀을 알게 되고 감사할 줄 알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과 통로를 열면 부처님의 한량없는 은혜와 위신력이 지금 내 생명에 넘치고, 좀더 반야바라밀을 염하고 믿음이 깊어지면 그것이 참으로 현실인 것으로 확정되어 버립니다.

내 생명 부처님 생명, 내 생명에 진리의 태양이 빛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참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경우는 모호한 경계에 눈이 가려서 모호함만 보이지 참으로 있는 진리적인 현실을 보지는 못합니다.

보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말을 듣고 생각을 하면 생각이 나고 그렇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 진덕화 보살이 감사를 배웠다고 했는데 감사를 배우기 전에 누구든지 내 생명에 부처님의 진리광명이 충만해 있다는 사실을 내가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믿기 이전에 원래부터 그렇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저절로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내 생명이 지금 괴로움에 젖어 있고 어려움을 만났다 하더라도 내 생명 밑바닥에 진리의 태양이 빛나고 있으며 부처님의 은혜와 위신력이 지금 나에게 깃들어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이 부처님의 은혜, 위신력에 대한 직관과 감사가 자기 운명을 바꿔가는 것입니다.

참으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무명인가.

무엇이 우리를 어둡게 만드는가.

진리의 태양은 찬란히 빛나고 있건만 무엇이 우리를 어둡게 만드는가.

그것은 바로 미혹의 구름입니다.

미혹의 동굴 속에 들어가 있어서 그렇습니다.

미혹의 구름이라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육신을 자기 자신으로 삼는다는 것과 생각이 자기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육신과 생각이 자기라고 아는 데서부터 무명이라는 것이 자랍니다.

육체로 자기 몸을 삼고 생각의 그림자로 자기 마음을 삼아서 거기에 현혹되어서 범부가 되는 것이며, 자기의 본래 밝은 광명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여기서 이 몸을 가지고 살고, 이 세간 물질을 가지고 살고, 이 생각을 움직여 가지고 살 때 이것은 뜬구름 같은 것입니다.

참으로 있는 것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호흡하고 말하고 생각하고 호흡하고 있는 이것, 눈에 안 보이지만 참으로 있는 것을 의심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알아서 육체와 물질과 감각경계에 매어있는 데서부터 벗어나게 될 때에 바로 부처님과 무한공덕 세계에 통로가 열리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존재는 진리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존재다.” 하신 대목에 다시 착안하고 싶습니다.

우리들의 존재는 ‘나는 나대로 이럭저럭 살다가 끝난다.’고 하는 아무 가치가 없는 그런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존재라고 하는 것은 이 땅에 진리를 실현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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