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을 부르는 목적***
-성수스님-
살 줄 아는 것은 어떻게 살아야 살 줄 아느냐? 하루에 24시간, 8시간 자고 8시간 놀고 8시간 일하고 하면 24시간인데, 한 시간씩만 자기가 뭔가 인생을 한 번 돌아 보는 겁니다.
사람은 20년 크고, 20년 동안 여물어지고, 사십이 넘어가면 눈썹도 하나 희어지고 머리도 하나 희어 지고 이빨도 하나 흔들해져 나사가 늘어집니다.
40대부터 늘어져 가지고 20년 내려가면 육십.
육십 내려 가면 그 다음 20년은 들어갈 준비해야 됩니다.
천 년 만 년 살 거라고 기대 걸지 말고, 정말 몇 십 년 보장할 수 있는 계약서도 없는 이 몸을 태산같이 믿고 사는 사람들이 수두룩 했어요!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건 생물이야! 이 생물을, 자기 생물, 몸뚱이 관리하는 법도 모르는 작자가 부처 된다고 왔다 갔다 해봐야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이 몸은 물질이야! 물질은 따뜻한 기운, 물 기운, 바람 기운, 이 세 가지가 멀어지면 끝장나는 겁니다.
그러면 염불을 많이 하면 극락 간다고 하지만은 죽은 뒤에 극락 가라면 반드시 내 발로 걸어 다닐 때, 내 눈으로, 두 눈으로 똑똑히 볼 때, 극락세계가 어디 있는지, 가는 길은 어느 길인지, 가긴 누가 갈 건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 짓지 못하고, 자기 발로 걸어 다니고 지 눈을 떠 가지고 있을 때도 못 가는 작자가 죽을 때 당황해서 천지가 아득할 때, 극락세계 간다는 것은 서울 김서방네 집 찾아가는 격입니다.
막연하게 어디로 갈 거냐는 것입니다.
그런 공짜 염불 그만하고 뭔가 한 번 생각해봐야 될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염불하는 것도 부처님 부르는 때도 부르는 이유가 분명히 서야 됩니다.
왜 부르는지, 무엇 때문에 부르는지, 반드시 부르면 한 번 불러서 안 나오고 두 번 불러서 안 나타나면 세 번 만에는 삼천대천세계가 둘러꺼지게 불러 가지고 부처님을 만나 봐야 합니다.
삼천대천세계가 바깥 세계가 아니고 내 탐심(貪心), 내 진심(瞋心), 내 치심(癡心)이 다 무너지고 마음의 문이 탁 열리면 자성극락 아미타요, 자기 성품이 바로 극락세계가 됩니다.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라, 반드시 부를 때는 만나볼 각오가, 목적과 기대와 희망이 서 가지고 척 불러서 하루 한 마디씩 불러 3일만에 완전히 만나보고 끝장을 내야 합니다.
시작했으면 결론이 나와야 되는데, 천 년 만 년 불러도 결론이 나지 않습니다.
만약에 집에 손자가 할아버지 할머니 열 번만 계속 부르면 ‘저놈의 새끼, 왜 자꾸 쳐 부르기만 하느냐’고 작대기 들고 나갈 겁니다.
우리 부처님은 너무 착하고 점잖아서 매일 불러도 화도 안 내고 가만히 있는 것은 워낙 점잖으니 가만히 있습니다.
나부터라도 다른 할아버지라도 가만히 안 있을 겁니다.
부르는 목적이 분명히 있어 가지고 부르면, 확실히 세 번 불러서 척 만나 놓고 보면 정말 자아를 발견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부른다는 개념은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