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관스님─의지하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

의지하고 실천해야 할 가르침 –

지관스님

스님이나 신도나 사부대중, 누구를 막론하고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몇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이 세상에 올 때에 어디서부터 왔는가?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인생 철학을 바로 느낄 수 없습니다.

30세 된 사람은 30년 전에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면 어머님 모태로부터왔다고 하겠지만 어머님, 아버님, 자기 자신도 없을 때는 어디서부터 왔는가는 쉽게 답이 없습니다.

이것은 일대사입니다.

근본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며 자기를 찾는 근본이기에 일단 그 생각을 우리는 마음에 가지고 한 번이라도 내가 어디서 왔는가 반조를 해 봐야합니다.

둘째,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부처님의 제자가 됐거나 안됐거나 우리는 어떤 사람을 의지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의지해야만 마음의 안도를 얻고, 의지해야 재앙이 소멸되고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물론 부모님, 친구, 가족, 선생님, 선배를 의지해야겠지만, 불자로서 가장 의지할 대상은 부처님입니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입니다.

만약 나쁜 사람을 의지한다면 앞길은 암흑의 불행입니다.

다행히 우리는 불문에 들어와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기에 그 문제는 해결 됐지만, 불문에 들어왔어도 삿된 생각을 하면 안됩니다.

부처님께 의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야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스스로 말씀을 하지 않습니다.

경전에 기록만 있을 뿐입니다.

경전은 스스로 들려주지 않습니다.

그것을 전달하는 분이 승가, 즉 나 보다 먼저 부처님을 안 분으로 그 첫째로 스님을 뽑습니다.

그래서 불법승(佛法僧)에 의지한다.

즉, 부처님, 부처님의 가르침, 스님에게 의지하는 것으로 삼귀의(三歸依) 라고 합니다.셋째, 우리는 어떤 행을 닦아야 하느냐?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마음 가짐을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 바탕은 하나지만 그 속에서는 악한 마음도 생길 수 있고 착한 마음도 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악한 마음은 억제하고 착한 마음은 일어나도록 스스로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쳐 준 것이 부처님 경전이며 계율입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 때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당신이 돌아가신 후에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합니까?” 부처님이 답하시기를 “내가 설해 놓은 계율로서 스승을 삼아라.” 라고 하셨습니다.

계율에는 신도의 계가 있고 사미승의 계, 비구의 계, 비구니의 계가 각각 다릅니다.

재가 신도의 계는 오계입니다.

알기는 잘 아는데 실천이 안됩니다.

살생하지 말라 하지만 살생하게 되고, 도둑질 말라지만 또 하게 되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신행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부처님이 일러준 경전에 있는 대로 본래 마음은 청정합니다.

그런데 한 생각 잘못해서 근본무명이 일어나 구름이 낀 것처럼 꺼멓게 되었습니다.

진실한 마음은 뒤로 사라지고 구름 망상과, 나쁜 무명의 어머니, 탐심의 어머니로부터 팔만사천가지 고뇌망상을 내 놓습니다.

좋은 일 못하고 그른 일만 합니다.

그러니 행복하지 않고 불행한 과보를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가르침인 계율을 다 못지키지만 지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부처님 법 가운데 육바라밀, 팔정도 등 좋은 법이 많이 있는데 잘 안 지켜집니다.

육바라밀을 해야만 성불한다고 하는데 실천하기 쉽지 않습니다.

첫째는 보시입니다.

돈 없다고 못 한다는 사람도 있는데, 돈 없어도 보시한다는 법이 있습니다.

생각으로 할 수도 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자기 불행처럼 생각한다면 이것은 바로 무애보시입니다.

또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혼자만 알지 않고 주위에 알려주는 것은 법 보시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보시인데 그것을 못하게 하는 육패라는 방해자가 있습니다.

육패가 있으면 육바라밀이 안됩니다.

보시를 방해하는 것은 방탕이요 인색한 마음입니다.

검소한 마음은 해야하지만 내것 아닌 것에 욕심을 내고, 써야할 때 안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시바라밀이라는 것은 돈을 벌어서 절약하고 그것을 좀 떼서 나보다 어려운 사람에게 베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을 때까지 쌓고 모아도 만족치 못하는 마음이 방해를 합니다.

사람이 백년도 살지 못하는데, 천년 만년 사는 것처럼 계획을 세웁니다.

또 생과 죽음 사이에 머물러 있는 이 정체가 무엇인지도, 이 몸뚱어리만이 내가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살다가 생명을 떠나는 날이 분명히 있습니다.

한물건이라는 자리가 있는데 그것은 어디로 갈 것인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것을 알라고 하셨고 그래서 참선행을 해야합니다.

참회하고 기도 해야합니다.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릅니다.

누구에게 의지하느냐? 부처님, 관세음보살, 신장님에게 의지하고, 과거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액난이 적게 해달라 하는 참회를 해야합니다.

부처님에게 백년 살게 해달라, 백억 벌게 해달라, 자식 잘되게 해달라.

이렇게만 바란다면 광명을 해서 구원의 손을 뻗치려해도 우리에게 닿지가 않습니다.

책임은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무슨 행을 닦아야 할 때, 계율을 지키고 마음을 닦아야 합니다.

보시 하는 것은 마음 닦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지계.

계를 지키기는 힘들죠.

술 먹지 말라해도 안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계를 방해하는 오염된 마음이 있기에 못 지키고 마음이 탁해졌습니다.

곧은 마음, 깊은 마음, 남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해야합니다.

그래야 계율을 지킬 수 있습니다.

셋째, 인욕.

참아야 합니다.

안 참으면 살 수 없습니다.

일의 어려움 참아야 성공이 오고, 어떤 대상이 괴롭게 해도 참아야 편합니다.

부딪치면 깨집니다.

그러면 피차 손해 보게 됩니다.

가정에서도 참아야하고 직장에서도 참아야 합니다.

일단 참고, 다음에 권고해서 일러주고, 그래도 안 들으면 그만입니다.

참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은 진심입니다.

진심은 마음 가운데의 불길입니다.

공덕의 숲을 다 태우고 맙니다.

공덕을 태우면 아무 것도 없어 불행하고 지옥가게 됩니다.

그래서 진심을 안 내야 인욕 바라밀이 됩니다.

화엄경에 보면 한번 진심을 내면 백가지 천가지 장애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너무 참으면 병이 되기에 화를 내기도 해야 합니다.

화를 내도 털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을 잘 하는 것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넷째, 선정바라밀.

마음을 고요히 집중하는 것입니다.

일념으로 기도하는 것.

기도하면서 딴 생각하면 백날 기도해야 소용 없습니다.

기도할 때 일념으로 해야합니다.

선방에 앉아서 하는 것만이 정진이 아닙니다.

어떤 일을 하든 그 일에 집중해서 하는 것이 선정입니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지혜가 나타나고 그러면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보는 것이 견성입니다.

마음이 산란하면 안됩니다.

사람이 생활을 간소하게 해야지, 친구도 너무 많이 만나면 안됩니다.

도움이 될 사람을 만나야지 아무나 만나면 화투치고 노래방 가면 오염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항상 간결하게 일념을 가져야 하는 것이 선정입니다.

그것을 못 하게 하는 것은 산란심 때문입니다.

책을 보고 있는데 집중이 안되고 딴 데 생각이 있으면 들어오지 않습니 다.

그러면 자세가 비딱해지고 마음 자세도 삐뚤어집니다.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닙니다.

그래서 선정을 닦아야 됩니다.

꼭 선방에 와 참선하는 것만 선정이라 생각마세요.

기도할 때 집중하고 일 할 때 자기 일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다섯째, 정진.

마음을 내면 시간이 빨리 가고 힘들지 않지만 억지로 하려면 허리도 아프고 지겹습니다.

뿐만아니라 하는 일에 재미를 붙이고 충실히 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정진이라는 것은 하는 일에 일념을 내는 것인데 못하게 하는 것은 해태입니다.

게으를 해, 게으를 태자.

게으른 사람은 자성할 수 없습니다.

학생이 게으르면 학점이 나쁘고 평생 따라다닙니다.

취직할 때도 안 뽑습니다.

여섯째, 지혜 바라밀.

슬기로운 것입니다.

앞의 다섯 가지 닦는 것은 결과를 맺으려는 원인입니다.

즉, 지혜를 얻으려고 앞의 다섯 가지를 하는 것입니다.

지혜 바라밀은 결과입니다.

남의 화단에 꽃 핀게 좋으면 자기 집에 심으면 됩니다.

그건 안하고 아무개 집엔 화단이 좋은데 왜 우리집엔 없어 하면 안됩니다.

원인을 하지 않고 결과를 바라는 것은 허공에 집 짓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인을 소홀히 여기고 귀중한 결과를 지망하는 것을 있을 수 없습니다.

좋고 행복한 결과를 얻으려면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을 해야 지혜라고 하는 것이 생깁니다.

지혜가 최고입니다.

지혜가 있으면 잘못할 일이 없습니다.

지혜가 있으면 보시바라밀도 필요 없습니다.

다 알아서 하니까요.

우리가 옳고 그른 것을 판단 못하는데 지혜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지혜를 방해하는 것은 우치라는 어리석음입니다.

어리석지 않으려고 글을 배우고 참선하고 기도, 염불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업장이 녹아지고 산란심도 녹아지고 선정이 생깁니다.

물이 고요해야 거기에 비칩니다.

탐진치가 있으면 안 보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죽습니다.

그때를 정해 놨습니까? 세상에서 옮기려면 이사하면 됩니다.

집 알아보고 예약해서 팔고 가면 됩니다.

그러나 중생이 금생에서 다음 생으로 이사할 때 어느 마을로 이사할 것인가? 육도, 지옥, 아귀, 축생, 천상, 인간, 아수라라는 육도의 마을이 있습니다.

죽으면 몸과 영혼이 재가 되면 그만이지만 불생불멸이라고 했습니다.

본래 마음은 죽지도 태어나지도 않고 몇 천겁이 지나도 현재일 뿐입니다.

미래가 미래가 아닙니다.

그래서 어디로 갈 것인가? 마침내 어느 곳으로 갈 곳인가? 라고 할 때 우리는 역시 부처님을 의지하듯이 극락세로 가야합니다.

그러려면 아미타불에 의지해야 합니다.

나이 많으신 분들은 아미타불 염불을 하세요.

모든 인간은 다 죽기에 제행무상을 바로 알고 사는 것이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어떤 행을 할 것인가? 그것이 육바라밀입니다.

인생을 돌아보면 지나온 것이 눈은 눈에 보이지만 앞은 예측불허입니다.

그렇기에 가르침, 선배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늘 마음을 놓지 말고 조심조심 신심을 높게 해서 어려움이 닥쳐도 좌절 말고 신심이 풀리지 말고 정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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