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스님─바라밀과 자비심

바라밀과 자비심

-성수스님-

나는 인간답게 잘 사는 방법으로 육바라밀을 지킬 것과 자비심을 갖출 것을 많이 권장합니다.

내가 권장하는 육바라밀은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육바라밀이 아니라, 여자 3바라밀과 남자 3바라밀을 더한 육바라밀 (六波羅蜜)입니다.

여자 3바라밀은 첫째, 보는 눈바라밀 둘째, 듣는 귀바라밀 셋째, 말하는 입바라밀 입니다.

한 가지를 보고 열 가지를 봤다고 하면 눈바라밀이 성취되지 못하고, 열 가지를 보고도 한 가지도 못 봤다고 하면 눈바라밀이 성취됩니다.

한 가지를 듣고도 열 가지를 들었다고 하면 귀바라밀이 못 되고, 열 가지를 듣고도 한 가지도 못 들었다고 할 때가 귀바라밀이 잘 되는 때입니다.

열 마디를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면 입바라밀이 못 되고, 할 말이 없을 때 입바라밀이 성취됩니다.

남자 3바라밀은 첫째, 중심이 딱 선 코바라밀 둘째, 헛걸음을 안 걷는 발바라밀 셋째, 헛손질 안 하는 손바라밀 입니다.

남자는 콧대가 바로 서듯이 줏대가 바로서고 주장이 바로서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리 기우뚱, 저리 기우뚱 하여서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남자가 가장답게 주장이 딱 서야 그 가정이 바르게 되지, 우유부단 하여서는 안 됩니다.

중심이 딱 서서 흔들림 이 없고, 고집 있고 주관이 뚜렷해야 코바라밀이 성취 됩니다.

이렇게 중심이 딱 서고 주관이 투철하여 헛걸음을 안 하고 헛손질을 하지 않게 되면, 어디가든 대접을 받는 인물이 됩니다.

그와 같은 대접받는 장부가 되면 세 가지 바라밀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자 여자가 각기 3바라밀을 닦아, 마침내는 ‘원망심이 없는 경지’를 이루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여야 원망심을 없앨 수 있는가? 아무리 나를 괴롭히고 귀찮게 할지라도 부처님을 닮으면 됩니다.

아이들이 법당 안에서 절은 커녕 풀썩풀썩 먼지를 내고, 꽥꽥 고함을 지르고 소란을 피우며 돌아다녀도, 부처님은 원망 없이 불평 없이 누구나 똑같이 대해 주십니다.

예쁘고 추하고 밉고 고운데 대한 차별이 없 습니다.

하지만 실로 이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인간의 정을 가졌으므로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꾸자꾸 원을 세우고 나아가면 마침내 그렇게 됩니다.

‘나도 부처님처럼 원망심 없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이렇게 자꾸자꾸 맹세의 원을 세워야 합니다.

거듭 거듭 원을 바라면서 하루하루 닦아 나가면, 원망심이 사라지면서 자비심이 샘솟게 됩니다.

아기가 방바닥에 싸놓은 똥을 닦고 치우면서, 원망심 은 커녕 애기 볼을 비비고 궁둥이를 토닥거리며 싱글 벙글 웃는 엄마의 모습으로 바뀝니다.

아기를 무조건 적으로 사랑하는 그 인품이야말로 대자대비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기에 대해 조그마한 원망도 불평불만도 없는 그 마음이야말로 진불(眞佛)의 마음입니다.

아기가 싼 똥자루를 쥐고, 아기와 얼굴을 마주 비비고 생긋이 웃는 그 마음이야말로 평화와 기쁨이 가득한 대자 대비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원망이 없는 대자대비한 마음으로 세세생생토록 살아가면, 그사람은 부처가 아니 되려 할지라도 그대로 부처님입니다.

똥을 싼 내 아기를 대하는 마음으로 일체중생을 대할 줄 알면, 그 사람은 도를 닦지 않을 지라도 부처님과 같은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런 사람은 일종의 바보입니다.

그냥 천치 같습니다.

바보천치의 마음이 무엇입니까? 원망심이 없는 대자 대비한 마음입니다.

우리 불자들은 이 마음을 키워야 합니다.

원망심을 대자비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원망심을 없애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원력을 세워서 노력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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