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는 일을 떠올려라
-현진스님-
이해인 수녀님의 시속에 “죽음을 잊고 살다가 누군가의 임종 소식을 들으면 가슴 속에 찬바람이 분다”는 구절이 있다.
누군가의 병문안을 다녀왔을 때,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를 들을 때, 요즘처럼 서늘한 바람이 창가를 지날 때 우리는 문득문득 죽음을 떠올리게 된다.
가끔 상가喪家에 들러 임종 염불을 하고 죽은 자의 모습을 보고 나면 내 자신이 새삼 겸손해진다.
우리의 삶이 보잘것없는 뜬구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끼기 때문이다.
명예와 재산, 교만과 아집으로 살지만 죽을 때는 삶에 지친 육신 하나뿐이라는 사실이다.
죽은 자를 보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관계없이 모두가 마지막으로 입는 옷은 똑같다.
주머니 없는 거친 베옷 한 벌 입고 떠나는 게 인생의 마지막 모습이다.
이처럼 마지막으로 입는 옷에는 주머니가 없다.
죽는 길에는 명예와 재산은 물론이고, 그 무엇도 가져갈 수 없다는 뜻이 아닐까.
부처님은 돌아가실 때 관 밖으로 두 발을 보였고, 세계를 지배했던 나폴레옹 또한 양손을 관 밖으로 드러내 놓았다고 한다.
두 발과 두 손은 우리 삶의 중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우리 삶에서 욕심과 소유의 용도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인생을 마감할 때, 분명하고 모범적인 발자국을 남기라는 의미에서 부처님은 두 발을 보였고, 나폴레옹 또한 세계를 지휘했던 손이지만 결국 빈손으로 간다는 의미에서 그랬던 게 아니었을까.
가까운 친지의 죽음은 우리들 차례에 대한 예행연습이며, 현재의 삶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삶은 불확실한 인생의 과정이지만 죽음만은 틀림없는 인생의 매듭이다.
인도의 성자 간디는 삶의 기술을 모르는 사람은 죽음의 기술도 알수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잘 사는 일은 잘 죽는 일과 똑같다.
때때로 죽음을 떠올리자.
그래야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똑바로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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