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스님─수행은 거문고 줄을 다루듯이

수행은 거문고 줄을 다루듯이

-보경스님-

道, 속도보다 진솔한 자세 중시 한 사문이 어느 날 밤에 가섭부처님의 (유교경)을 외우는 중이었는데, 그 소리가 슬프면서도 급하고 회한에 가득 차 물러서려는 것처럼 들렸다.

부처님께서 사문에게 물으셨다.

“너는 출가하기 전에 집에 있을 때는 무슨 일을 하였느냐?” 사문이 대답했다.

“저는 거문고를 즐겨 탔습니다.” “거문고 줄이 느슨하면 어떻게 되는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거문고 줄이 너무 팽팽하면 어떻던가.” “줄이 끊어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팽팽하지도 느슨하지도 않으면 어떤가.” “모든 소리가 제대로 나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문이 도를 배우는 것도 이와 같다.

마음이 적절하고 조화로우면 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도에 대하여 너무 급한 생각을 내면 몸이 피로해지고, 몸이 피로해 지면 마음에도 싫증이 나고, 생각에 싫증이 나면 번뇌가 일어나 수행에 퇴굴심이 생기게 된다.

수행에 퇴보가 일어나면 죄업만 더하게 된다.

마음이 항상 청정하고 즐거워야 도를 잃지 않을 것이다.” 너무 급하면 몸이 피로해져 싫증나고 퇴굴심 생기게 돼 삶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가진 재능은 천차 만별이어서 일정한 척도를 가지고 말하기도 어렵다.

일을 성공적으로 할 수 있느냐의 관건은 첫째가 재능 이라면 둘째는 그 일에 대한 집중력의 여부일 것이다.

이는 선천적인 면과 후천적인 면에서 가장 우선적인 조건이기 때문이다.

수행도 마찬가지어서 사람의 근기가 있고 원하는 수행방법에도 편차를 보인다.

여러 사람이 길을 나서도 빨리 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느리게 가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런데 누가 멀리 갈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리 몸은 자신이 겪어내는 환경에 따라 단련되어진다.

트레이닝에 있어서 기본적인 규칙은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넘기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동물과 비슷하여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적응해가는 이치이다.

수행은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극복해가는 먼 과정이다.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무라카미 하루끼의 산문집을 즐겁게 읽었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이자 마니아인 그가 올림픽 마라토너인 1980년대 세계 마라톤의 영웅이었던 세코 도시히코(보스턴 마라톤 2회, 런던 및 시카고 마라톤 대회우승 등)에게 달리고 싶지 않을 때, 달리기를 그만 두고 집에서 잠이나 자고 싶어지는 때는 없는지 물었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늘 그렇습니다!” 인간의 불행은 모두 중심을 벗어난 데서 비롯된다.

밸런스와 규칙을 어기고서 삶을 도모할 수 있던가.

삶은 실재의 다른 말이다.

우린 어차피 살아가야하고, 그 가운데서 절절할 수만 있다면 즐거움이 일어난다.

즐거움은 조화로운 삶의 자세가 가져오는 축복이다.

이도 하나의 도이다.

불행은 지옥 같은 삶이다.

지옥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좌절하게 만든다.

지옥은 불균형의 상태이다.

따라서 지옥은 정상에서 가장 멀리 벗어난 세계이고 극락정토는 가장 조화롭고 정상적인 세계라 할 수 있다.

어디를 가고 오며, 무엇을 얻고 잃으며, 어떤 삶을 영위하느냐의 문제는 균형감각에서 기인함을 잊지 말라.

크건 작건, 도는 진솔한 자세를 중시한다.

속도를 잊으라.

댓글 달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항목은 *(으)로 표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