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은 발원으로 새봄을 열어라
도선사 주지 혜 자 스님
병술년 동지(冬至)가 얼마전이였나 싶더니 벌써 새로운 한해를 맞은 지 한 달이 지나 봄을 알린다는 입춘(立春)을 훌쩍 지났습니다.
아직도 삼각산에는 하얀 눈이 쌓여 있고 냇가에 얼음은 꽁꽁 얼어 있는데 봄(春)의 문턱을 넘어섰다니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로운 계절의 시작이라니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도리를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벌써 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러다 꽃 샘 추위도 몇 번 올 것이고, 봄비도 몇 번 내리겠지만, 생명의 온기(溫氣)를 선물하는 계절인 봄이 다가오고 있다 하니 마음이 설렙니다.
세속에서는 입춘에 입춘부(立春符)를 사찰이나 기도처에서 구입해 집안에 붙이거나 대문이나 정문 앞에 입춘대길(立春大吉) 만복운래(滿福雲來) 입춘대길(立春大吉) 가내태평(家內太平) 등의 입춘방(立春榜)을 써 붙입니다.
입춘은 새 발원의 시기
입춘은 겨우내 움츠렸던 몸과 마음을 여는 절기, 새롭게 출발하는 시기라는 의미도 함께 깃들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부터 원화소복(遠禍召福)을 기원하는 의미의 입춘을 중시해 왔던 것입니다.
또 입춘 날 전날 밤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여겨왔습니다.
한 해 동안 액(厄)을 면한다고 하여 밤중에 남몰래 개울에 징검다리를 놓거나, 가파른 고갯길을 닦아 놓았는데, 이는 우리 불교의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의 공덕이 전통 미풍양속과 어울려진 것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평상심이 행복한 삶 비결
입춘은 우리 민족과 매우 친근한 절기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날에는 우리 불교집안에서나 그 전통을 이어가고 있지, 많은 도시인들은 별다른 감정 없이 입춘을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입춘 불공 법회를 봉행하는 것이 그런 민속적인 전통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불교적인 의미가 더 강하다고 봅니다.
입춘은 봄이 시작되는 날이자 절기상으로 일 년이 처음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입춘을 보내며 어떤 마음을 먹느냐? 하는 것은 정해 년 일 년을 어떤 원력으로 사느냐? 하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일 오늘 불자 여러분이 진심으로 바른 서원을 세우고 오늘 세운 마음이 일면 내내 변치 않는다면 정해 년은 여러분의 소망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한해가 될 것입니다.
이 같은 마음으로 새 봄을 맞이한다면 『화엄경』에서 말씀하신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중생의 마음은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보고, 듣고, 맛보고, 감촉 하는데 따라 변하고, 생각하는데 따라서 마음은 갈대처럼 흔들립니다.
이 갈대처럼 흔들리는 마음으로는 아무리 훌륭한 서원을 세운다 할지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발심시변정각’의 마음은 주변 환경의 변화에 따라서 갈대처럼 흔들리는마음이 아니라 요지부동하는 한결같은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평상심(平常心)이라고 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선사스님가운데 조주(趙州)선사라는 분이 계셨는데 이 스님이 남전(南泉)선사에게 “어떤 것이 도인가”묻자 남전선사는 “평상심이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도(道)란 진리요, 행복한 삶의 비결입니다.
이 진리를 남전선사는 평상심이라고 하셨습니다.
평상심이란 변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변하지 않는 마음이 진리요, 행복의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춘 때면 자신이 어떤 업(業)에 의해서 지배받고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하며 그것을 어떻게 소멸해 나갈지 방법을 찾곤 합니다.
때문에 입춘부적으로 한해의 삼재팔난(三災八難)을 막고자 하며, 동시에 영원히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닦기 위해 입춘불공기도나 삼재팔난소멸불공 기도에 동참하기도 합니다.
불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다 부질없는 일이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하나의 방편으로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실천하는 자비 생활화
우리 불자들은 봄이 되면 곡식의 씨를 뿌리고 화단에 꽃의 씨앗을 심듯이, 입춘 날에는 각자의 마음속에 부처님의 씨앗을 심도록 해야겠습니다.
부처님의 씨앗이란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한 가운데 있는 불성(佛性)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존재하는 한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 어느 곳, 그 어느 누구에게라도 그 청정한 불성을 아낌없이 씨 뿌려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 자비의 씨앗 심자
부처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먼저 만나는 사람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소서(日日是好日)”하면서 미소를 주고, 홀로 있을 때라도 항상 넉넉한 표정을 지어 보십시오.
나를 화나게 하는 사람, 늘 답답하게 하는 사람, 힘들게 하는 사람에게도 먼저 보살의 마음을 내십시오.
자신을 돌아보고 사람을 대하는 나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살펴서 자비스런 얼굴로 웃으면서 대하도록 노력하십시오.
또한 내가 갖고 있는 것을 나누어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보호받아야 할 사람이 보호받지 못하고 사는 사람도 있고, 병으로 고통 받으면서 위로 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으며, 늘 빈곤과 궁핍으로 생활에 곤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불자들은 부처님의 씨를 뿌리는 입춘을 맞아 그들에게 자비의 씨앗을 심어야겠습니다.
불자님들이 입춘에 세워야 할 서원은 악의 근원을 막고 선의 뿌리를 키워 나가며 아낌없이 부처님의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일이 그동안 어려웠던 모든 일을 풀 수 있는 모든 길이고, 앞으로 삼재팔난을 만나지 않는 방법입니다.
“남편이 꼭 승진하게 해 주십시오.”
“올해는 아들딸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도록 해 주십시오.”
“올해는 더 큰 집으로 이사 가게 해 주십시오.”
등의 발원은 작년 입춘에도 하셨을 것이고 재작년에도 하셨을 것입니다.
불자여러분 이제는 그야말로 불자다운 불공(佛供)을 올리도록 합시다.
“더 많이 베풀도록 자비심을 갖도록 해 주십시오.”
“더 큰 마음으로 세상을 보도록 해 주십시오.”
“부처님을 닮도록 해 주십시오” 하는 마음을 갖고, 이번 입춘에는 보다 넓고 깊게 자비의 씨앗을 뿌릴 수 있도록 발원하는 불자가 됩시다.
이러한 불자님들의 발원이 굳건할 때 정해년 입춘은 그 어느 때보다 부처님의 가피(加被)가 함께 할 것입니다.
자비의 씨앗을 뿌리는 입춘기도가 이루어질 때 불자님들 가정은 행복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봄이 되면 더욱 생동하는 우주의 기(氣)로 받아들이십시오.
이제 불자가 여는 봄은 달라야 합니다.
정리=남수연 기자 namsy@beopb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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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법문은 지난 2월 4일 입춘을 맞아 서울 우이동 삼각산 도선사에서 봉행된 입춘 기도에서 도선사 주지 혜자 스님이 설법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이다.
선묵 혜자 스님은
충청북도 충주에서 태어나 14세 때 삼각산 도선사에서 출가했다.
청담 스님을 은사로 모시고 열반하실 때까지 시봉했다.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원을 졸업하고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총무원장 사서실장을 역임했다.
2002년 노인의 날에 대한민국 국민포장을 받기도한 스님은 현재 청담학원 이사장, 혜명복지원 이사장, 군불교위원회 상임위원, 삼각산 도선사 주지로 포교와 대중교화에 진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