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환스님─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할 때가 제일 행복

동국대 명예교수

인환스님

“자기 맡은 일 열심히 할 때가 제일 행복”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열정.노력이 ‘무아’의 참모습

그런 모습으로 살 때 너그럽고

참다운 내일의 삶도 가능해져

(사진설명: 정릉 경국사에 20년 넘게 주석하며 늘 온화한 얼굴과 웃음을 잃지 않는 스님은 지금도 전국의 불자들을 만나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

김형주 기자)

4년 만에 만난 스님은 한결 같았다.

만면에 웃음을 거두지 않는 온화한 얼굴에 상대방을 편하게 해주는 부드러운 말투, 낙엽이 뒹구는 정릉 경국사 풍경, 작고 소박한 스님의 처소 등 바뀐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북한 핵실험으로 어수선 하던 지난 10일 서울 정릉의 경국사는 깊은 산사 마냥 고요했다.

차를 건네던 스님은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온 일도 아닌데 너무 놀랄 필요가 없다”며 “평상심을 유지하라”고 말했다.

스님은 하지만 “국민들은 편안한 마음을 갖되 정책 당국자들은 아주 작은 변화까지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며 긴장을 풀어서는 안된다”고 충고했다.

즉 긴장을 놓치지 않고 세심하게 살피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정책 당국자들이 있을 때 국민들은 안심하고 믿고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말씀이다.

하지만 상황은 거꾸로다.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 여야 정치인등 이른바 사회 지도자들을 초청해 ‘고견’을 듣는다는데 큰스님들을 찾아뵙는 것이 지혜를 빌리는 첩경(捷徑)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캐나다에서 해외포교에 매진하던 중 지관스님(현 조계종 총무원장, 경국사 조실)의 청을 받고 한국에 들어온 뒤 24년간 줄곧 경국사에 주석 중인 스님은 1982년 동국대 교수로 부임 한 뒤 정년퇴직까지 후학양성에 매진했다.

세속 나이로 76세인 스님은 15년 째 매달 한차례 법회를 하는 회룡사를 비롯 부산 내원정사, 조계사, 인천, 대전 등 전국의 불자들을 만나 부처님 말씀을 전한다.

스님은 “체력과 기력이 닿는 한 열심히 일할 것”이라며 “자기일 열심히 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어른 세 명이 들어서자 더 이상 앉을 공간이 없는 스님 방에서 몇 말씀 여쭈었다.

가장 기본적인 불교교리인데도 불자들이나 국민들에게 잘못 알려져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질문했다.

스님은 “불교는 제대로 잘 알아야하며 바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한다”며 “제일 무서운 것이 무지(無知)”라고 강조했다.

– 업(業)이론을 본 뜻과는 다르게 운명론이나 결정론으로 받아들이는 신도나 국민들이 많습니다.

또 제행무상(諸行無常)과 같은 교리도 허무주의로 많이 받아들입니다.

이처럼 불교 교리가 본 뜻과 다르게 변질되거나 잘못 받아들여져 불교를 왜곡되게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교의 기본적인 교리를 다투는 말로써 〈장아함경〉에 ‘일체의 행은 무상(無常)하다.

일체의 법은 무아(無我)이다.

열반은 적정(寂靜)하다’고 하였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로 믿고 불교의 정신을 바로 실행하는 데는 깊이 모든 것이 무상함을 느끼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그런데 무상이라는 말을 일반적으로는 오직 어떠한 경우에 실망하여 허망함을 맛보게 되는 것과 같은 다분히 감정적이며 소극적인 입장에서 사용되는 일이 많음을 보게 된다.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무상이란 결코 그러한 감정적인 느낌이거나 무엇이 끝나는 것을 표현하는 그런 말이 아니다.

오히려 끝없이 쉼 없이 변천하면서도 활발하게 역동하는 양상을 무상하다고 표현하는 아주 적극적인 뜻이 들어있음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예컨대 봄철에 뿌려진 씨앗이 태양에 의한 적당한 빛과 열을 받으며 비에 의한 적기에 적량의 수분을 얻게 되는 천지자연의 혜택과 땀 흘려 가꾸는 정성스러운 사람의 손길에 의하여 잎이 피고 가지가 늘며, 꽃이 피어 열매가 맺어서 시절 인연이 무르익은 가을 절기에 풍성한 결과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바로 무상의 모습인 것이며, 사랑스런 젖먹이 아이가 차츰 자라나 마침내 헌헌장부로 성장하는 것도 바로 무상한 까닭에 볼 수 있는 현상인 것이지, 늙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현상만이 무상한 모습은 아닌 것이다.

만일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없다면 삼라만상과 우주법계가 생멸하며 변천하는 무상한 존재가 아니라면 그래서 모든 것이 상주불멸하며 고정불변 한다면 아무런 진보도 발달도 없을 것이다.

병으로 누워서 치료하는 사람도 언젠가는 병이 나아서 건강하게 될 것임을 믿기 때문에 투병생활 가운데서 사는 보람을 찾을 수 있고, 어려운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앞으로 나아지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고생을 견디며 살아가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 진보하여 성장하고 발전하는 모습이 바로 무상의 모습이요 진리의 모습이다”

스님은 이어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열정과 노력이 바로 무아의 참모습”이라고 강조했다.

“모든 것이 인연에 따라 생겨서 인연에 따라 흩어지니 이렇게 연기한 법은 자성(自性)이 없다.

자성이 없는 까닭에 그것은 무상하고 무상한 까닭에 그것은 무아(無我)이다.

그런데 무아에 대해서도 역시 발전적으로 보는 안목이 있어야 그 뜻이 올바로 살아난다.

말하자면 현재에 직면한 문제를 설사 그것이 어렵다 하더라도 피하려 하지 말고 당당하게 정면으로 맞서서 성의를 다하여 정열을 기울여 해결하고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정진이며 주어진 일에 전신전력을 다하는 것이 바로 무아의 참모습이다.

그러므로 모든 것이 무상함을 깊이 자각하고 온 힘을 다하여 오늘을 열심히 무아의 모습으로 살 때 틀림없이 너그럽고 진실로 행복한 내일의 삶이 약속되는 것이다”

– 욕망 때문에 고(苦)가 생긴다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성불하겠다는 의지도 욕망이 아니냐며 반문 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답해야 할 까요.

“그것은 욕심과 원력을 혼동한데서 나온 잘못된 견해다.

올바른 원력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면 올바른 원력과 욕심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바로 자기의 이익됨(自利)이 중심인가, 아니면 이타(利他)를 위한 것인가를 보면 된다.

자리를 추구하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다고 욕심이 나쁜 것은 아니다.

욕심은 인간이 살아가는 기본자세다.

문제는 이를 얼마나 잘 통제하느냐에 있다.

지혜를 갖추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 스님들 중에는 신도들은 너무 많이 알면 신심이 떨어지고 건방져지기 때문에 부처님 말씀을 너무 많이 알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불교는 출가자나 수행자를 위한 종교가 아니다.

불교는 무지해서는 안된다.

바로 알 수 있도록 깨우쳐야한다.

그것이 바로 포교다.

불교를 제대로 알게 될 때 자발적으로 자신 있게 삼보도 공경한다.

성전의 가르침을 못 배우게 하는 것은 중세 전제군주나 전체주의 국가에서나 있는 우민(愚民)정치와 다를 바 없다”

스님은 최근의 인문학 위기론에 대해서도 언급, “세계적인 풍요가 철학 등 인문학 경시로 이어졌다”며 “아무리 물질이 풍부해도 임제스님의 말씀대로 내가 주인이 되는 ‘수처작주’(隨處作主) 정신을 가르쳐야한다”고 덧붙였다.

박부영 기자

chisan@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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