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은 절대 평등이요 절대 公器” 만암 종헌스님
인생과를 간단히 말하면 인연이라 말할 것이다. 인(因)이란 우리의 본성이고, 연(緣)이란 우리들의 세계 바로 연이다. 그러면 인연의 뜻은 무엇인가. 인은 종자와 같고 연은 물과 흙 같으니 아무리 종자가 있더라도 물과 흙의 연을 맺지 않으면 발생치 못함과 같다. 대개 사람은 개개인이 본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성은 천지보다 먼저 하여 그 시작이 없고 또한 천지보다 뒤에 하여 그 종말이 없다. 그러므로 곧 불생불멸(不生不滅)하며 부증불감(不增不減)이라 부른다. 이성은 사람마다 같을 뿐 아니라 중생과 모든 부처가 함께 동일하다. 모든 부처는 연을 따라 본성을 여실히 수련하는 까닭으로 본래 가진 공덕을 많이 지니고 있으나 우리 중생은 연을 따라 작업의 차별이 있으므로 지혜롭고 어리석기가 중생마다 차별이 있어 선악의 인과응보가 다르다. 이와 같이 이생, 저생에 깨끗한 연이 물듦에 따라 선(善)을 짓고 악(惡)을 지음이 다양하다. 그러므로 중생의 번뇌가 다함이 없으며 이 다함없음을 따라 생사(生死)가 무궁하여 이 무궁함을 따라 모든 부처님의 인연이 더욱 무궁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생관은 인연이라 부른다. 생(生)이라 함은 만물의 번영함과 같고 사(死)라 함은 만물의 조락함과 같다. 그러므로 번영이 곧 쇠락의 근본이요, 쇠락이 곧 번영의 근본이다. 사람의 생사도 이와 같아서 같은 뿌리 다른 가지에 그 간극이 천지차이다. 이른바 깨달은 사람의 중대한 관념을 둘 것은 못 되나 지혜롭고 어리석음은 물론하고 생사에 대한 관념이 경중의 차별까지는 있을지라도 아주 무심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이른바 어리석거나 현명치 못한 경우에 있어서는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자기를 위하여 무수한 행복과 영원한 안락을 꿈꾸므로 그 생에 대한 강한 집착으로 근심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중생의 근기에 따라바른 길을 보이는 교화방편은 봄바람이 높고 낮음 없는 것 같아 지혜롭고 현명한 사람이라면 어떠한 인연이든지 이 몸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초목처럼 썩어지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특히 다른 사람을 위하고 자기를 위하는 가운데 도덕으로 자기를 닦으며 공덕으로 만물을 이롭게 하여 즐겁게 하고 남의 근심을 근심하는 것이니 생사의 관념은 동일한 경우나 그 가볍고 무거운 차별은 이와 같은 것이다. 사람의 생사관이 그 정도에 따라 이와 같이 달라 이는 세간상에서 면할 수 없는 차별이거니와 만약 출세간상에서 논한다면 생사가 청천에 뜬 구름이 일어났다 흩어짐과 같으니, 꿈과 같이 허망한 나의 육신이 법신과 같다. 멸하여도 멸함에 슬프지 아니하니 천강유수천강월(千江有水千江月)이요 생하여 생함에 착하지 아니하니 만리무운만리천(萬里無雲萬里天)이로다. 이 생사관이란 또한 대체 어떤 것인가? 내가 불교관을 말하고자 함은 마치 우물안 개구리의 격을 면치 못하는 줄을 안다. 각기 그 지식의 깊고 얕음을 따라서 우열의 차이는 없지 않다 할지라도 그 기량을 따라서 느껴지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므로 내 개인의 소감 일부분을 펼친다. 특히 나는 불교의 첫 머리에 절대 평등이 절대 공기(公器)임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대각 세존께서 소아(小我)를 버리시고 대아(大我)를 성취하시고, 자(自)와 타(他)가 둘이 아닌 가운데 대자대비로 중생의 근기를 따라 이끌어 주시되 진리도 설하시고, 사상도 설하시며 권(權)과 실(實)도 설하시어 어둠 가운데 밝은 빛을 지으시고, 길 잃은 자에게 바른 길을 보이시는 걸림없는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선택이 없고, 얻고 버림이 없는 무한의 교화방편은 마치 봄바람이 높고 낮음이 없는 것과 같다 . 또한 봄바람은 원래 높고 낮음이 없지만 꽃가지가 스스로 깊고 얕음이 있는 것과 같이 우리 중생의 근기가 똑같지 않으며 도의 깊이가 하나같지 않아서 도에 나아감이 느리고 빨라서 천차만별하고 우열이 각각 다르다. 이는 교화받는 자에 한하여 어쩔 수 없는 일이나 도가 원만히 성취되어서는 또한 절대 평등이요 절대 공기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도리는 사람에 있고 사물에 존재치 않음이 아니며 인격이 있고 없음에 따라 다르지 않다. 한 사람이 진리를 찾아 근원으로 돌아가니 허공이 모두 다 녹아 없어진다 하였다. 이런 까닭으로 나의 불교관은 허공처럼 원융하여 남고 모자람이 없고, 주체와 객체가 둘이 아니며 선악이 따로 없어 원수와 친한 이가 하나와 같으므로 절대평등이요, 절대공기라 부른다. 연기 사라지고 구름 걷힌 뒤에 밝은 달밤은 깊고 깊다. 붉고 푸른 빛이 도대체 무슨 빛이냐. 탄연한 옛부처 마음이다. – 〈만암집〉에서 발췌
만암스님
(1876~1956) 만암 스님은 1876년 전북 고창에서 출생해 1889년 장성 백양사에서 도진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법명은 종헌, 법호는 만암.
환응 강백으로부터 전강을 받았으며, 석전 한영 스님 문하에서 경학을 공부했다.
백양사 운문암과 청류암에서 경을 가르치다가 1907년 해인사 강백으로 추대됐다.
당시 교학에 통달한 대강백으로 명성이 높았던 스님은 학명스님과 함께 참선 수행, ‘이 뭣꼬’를 참구한지 7년만에 깨달음을 얻고 오도송을 읊었다.
평소 승풍진작을 위한 선농일여(禪農一如) 사상을 몸소 실천했고, 불교중흥과 국운융창을 위해 학교를 설립해 근대 한국불교의 사표가 됐다.
특히 가난한 중생들을 위해 사중에서 죽을 쑤어먹으면서 구휼에 앞장서기도 했다.
1929년 중앙불교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 교장으로 취임했고, 1946년 호남 고불총림(한국 최초의 총림)을 결성, 선교겸수의 종합도량을 설립하였다.
이어 1947년 종립 정광고등학교를 설립, 교장으로 취임했다.
1948년 대중들의 만장일치로 조선불교 교정으로 추대되었고, 1954년 조계종 종정에 취임했다.
1956년 세수 81세, 법랍 71년으로 백양사에서 좌탈입망했다.
불교신문 2102호/ 2월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