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살면 중생이요, 남을 위해 살면 보살 /
월도스님
신도 여러분, 이제 얼마 안있으면 백중입니다.
백중엔 선망부모를 위한 천도재를 지내는데, 절에서 지내는 천도재는 일반 가정에서 지내는 제사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영가들에게 음식을 공양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합니다만, 일반 제사는 조상의 음덕을 기리는 데 목적이 있고, 천도재는 영가에게 법문을 들려주는 데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영가들이 그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모든 집착을 놓고 중음신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태어날 수 있도록, 극락 왕생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려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것도 꾸준히 해야 비로소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처럼 법문도 자주 들어야 합니다.
믿되 듣지 않으면 벙어리가 되고 맙니다.
우리 불가에서는 단순한 ‘믿음(信)’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믿되(信) 이해하고(解) 행하여(行) 나아가 증득하는(證) 것까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믿음’이란 매우 중요합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믿음의 대상을 잘못 선택하여 후회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여러분 불자님들께서는 무엇을 믿습니까? 대개 부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부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부처님 가르침의 본질은, 바로 ‘나’ 자신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이라 말씀하신 뜻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중생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부처의 성품 즉 불성을 지닌 존재로서의 ‘나’, 쉽게 휘둘리고 상처받는 나약한 존재로서의 ‘나’가 아니라,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나’ – 그리하여 부처님과 동격의 성품을 지니고 있는 위대한 존재로서의 ‘나’임을 의심없이 믿으라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믿고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게 바로 ‘보살행’입니다.
■ 나를 위해 살면 중생이요, 남을 위해 살면 보살입니다.
알고보면 보살행이 이렇게 쉬운 것입니다.
부처가 되려거든 남을 위해 행하는 보살행을 실천해 나아가면 되는 겁니다.
남이 잘 되면 함께 기뻐해주고, 배고픈 사람을 만나면 내 음식을 선뜻 내어 주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망설임없이 도와주는 그런 보살행 말입니다.
그러기에 부처님께서도 말씀하시기를 ‘병자를 만나면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봐주라’ 하셨습니다.
■ 보살행을 하려면 지금 처해 있는 현실에 긍정적인 마음자세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기나..’ 하며 원망하고 짜증내기 쉽지만 한생각 돌려먹어 그 자체로 행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 전생에 지은 공덕이 얼마나 수승하여 이같이 사람 몸을 받아 이 세상에 나와 또 이렇게 부처님 법을 만나고, 미래에 더 큰 공덕을 이루려고 이렇게나 척박한 일을 겪는구나..’ 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달라 보일 것이며, 이것이 곧 지혜입니다.
가난한 자는 차라리 공덕을 쌓기 쉬워도 오히려 부자는 그렇지 못하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어려운 처지에 있어봐야 어려움을 이해하는데, 부자는 상대방을 헤아려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부자가 공덕을 쌓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고들 합니다.
마음만 고쳐 먹으면 훨씬 더 좋은 여건에서 보살행을 할 수 있는데도 말입니다.
개중에는 이담에 돈 많이 벌면 공덕을 짓겠다고 말하는 이들도 봅니다.
그러나 여러분, 처해진 여건대로 최선을 다하십시요.
그 때 그 때 최선을 다해야만 후회가 없습니다.
여건 되는대로 공덕을 짓지않고 미루고 벼르기만 하다가, 막상 여건이 나아지면 잘 할 것 같아도 그렇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습관이 굳어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돈 벌면 해야지, 애들 크면 해야지, 시간 나면 해야지 하며 미루지 않고, 한 줌의 씨앗이 있으면 있는대로 파종하고 두 줌의 씨앗이 있으면 있는대로 파종하는 이가 지혜로운 이입니다.
■ 미래로 미루지 말고 현실 속에서 보살행을 실천하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자식간에 형제지간에 부부지간에도 모두 마찬가지 입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배려해주는 보살행을 실천하십시요.
부처가 되고 싶으십니까? 부모의 역할에 충실하십시요.
부처가 되고 싶으십니까? 남편의 역할에 아내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십시요.
부처님께서도 수 많은 전생에 수 없이 많은 희생으로서의 보살행을 닦아 비로소 크나큰 완성의 모습을 이루신 것이며, 현실에 최선을 다 하는 것이 곧 업장을 소멸하는 길임을 잊지말아야 하겠습니다.
■ 도(道)는 먼 데 있지않습니다.
지금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무엇이건 거기에 마음을 모아 몰입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도(道)이며, 그런 습(習)을 들이는 것이 곧 ‘수행’입니다.
작은 씨앗을 뿌리면 작은 열매를 얻을 것이요, 큰 씨앗을 뿌리면 큰 열매를 얻을 것입니다.
신도 여러분, 중생의 밭에 보살의 씨를 뿌려 구경에는 성불하는 불자의 길로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