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 과 응 보 -구산큰스님- 이 한 생각이 영원한 세월이요 저 끝없는 영겁이 지금 이 한 생각이라.
이런 청정묘심을 매혹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열 가지 잘못(십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열 가지란 몸으로 세가지, 입으로 네 가지, 마음으로 세 가지다.
그러면 이 십악을 간략히살펴보자.
첫째, 생명을 살해하는 죄 이 세상에 존재하는 뭇 생명체는 그것이 유정물이건 무정물이건 그 어떤 것을 막론하고 죽기를 싫어한다.
그런데도 함부로 생명을 죽이고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고를받는다.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게 되면 다병과 단명과보를 받게 됨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둘째, 훔치는 죄 자신이 박복하여 현세에 받은 빈천고를 어찌 원망하랴.
온갖 방법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다가 악도에 떨어져서 무량고를 받은 뒤에 인간으로 환생하면 또 다시 빈천고를 면치 못할 것은 뻔한 이치다.
섯째, 정숙하지 못한 죄 일남일녀가 부부의 도리를 지키면서 안락한 가정생활을 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호간에 외방출입이 잦게 되면 싸움이 잦아지고 마침내 이것은 스스로 죄를 지어 그 갚음을 받는 것이 자작자수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넷째, 거짓말하는 죄 거짓말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첫번째는 마음을 닦아서 자성을 깨치게 되면 중생을 제도하여 나라의 은혜와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 시주의 은혜를 응당 갚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견성 못한 것을 견성했다고 성현을 속이는 죄다.
두번재는 정직한 말을 하고 남을 지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남도 속이고 자신도 속여 마침내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죄다.
다섯째, 꾸미는 말을 하는 죄 상대편에 덕화를 베풀고 자비심으로 남을 구제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비단결 같은 말을 꾸며서 남을 기만하고 마침내는 그 갚음으로 발설지옥에 떨어질 인을 짓는 것이다.
여섯째, 두 가지말을 하는 죄 정직한 말을 하여 남을 도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본 것을 보지 않았다 하고 또 못 본 것을 보았다 하여 남을 곤경에 떨어뜨리고 자신도 악도에 떨어지게 하는 것이다.
일곱째, 악담하는 죄 언제 어디서나 부드럽고 온화한 말과 자비심으로 중생을 교화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욕설을 하여 남의 심장에 불을 붙이고 덕이 깍이어서 마침내는 자신도 화를 입는 것이다.
여덟째, 탐욕을 내는 죄 제보시와 법보시와 무외시로 중생을 이익케 하여 정도로 인도하여야 할 것인데도 오히려 남의 물건을 온갖 방법으로 욕심내어 빼앗고 마침내는 그 갚음으로 인하여 악도에 떨어지는 것이다.
아홉째, 성내는 죄 상대방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대해 주어야 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필경에는 깨달음의 길로 가도록 신심을 복돋아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어 남의 신심을 떨어뜨리고 진심을 내게 하는 것이다.
열째, 어리석은 마음을 내는 죄 모든 중생에게 그 근기를 따라서 무진법문을 설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생들로 하여금 삼독심을 버리고 보리심을 내어서 무량대자비문중에 들어와서 선지식을 친견하고 무루지를 수증하여 생사고에서 초탈하도록 설법해 주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언행으로 불조를 비방하고 암흑세계에 떨어져서 무량고를 받는다.
그리고 설사 죄업이 다하여 다시 인간에 태어나도 불구자가 되어 많은 고통을 받는다.
이것이 어리석음으로 인하여 짓는 죄이다.
이와 같은 십악업을 소멸시키기 위해서는 마땅히 이와 반대되는 열 가지 착한 일인 십선행을 닦아야 한다.
이때에 다행히 선지석을 만나게 되면 과거에 지은 모든 업장을 참회해야 한다.
선심을 일으키고 복되는 일이라면 남보다 앞장서서 해야 하고 자기의 마음을 찾아 지혜를 닦아서 온갖 죄업을 없애야 한다.
그러면 의지가 더욱 견고해져서 보리도에 불퇴전하며 마침내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러나 혹자는 자신이 과거세에 복을 지은 것이 없어서 현세에 곤궁한 생활을 한다.
그리고 또 마음을 닦지 않아서 둔탁한 것은 생각지 않고 남을 원망하고 성을 자주 내어 악심을 일으키는 사람도 있다.
그리하여 필경에는 지옥, 아귀, 축생인 삼악도에 떨어져서 많은 고통을 받는다.
그러다가 최후에는 목석에 의지하여 목신도 되고, 돌에 의지하여 석신도 되고, 생사고가 무서워 바닷물에 가서 해파리가 되기도 한다.
해파리는 바닷물과 같은 보호색을 지녔으나 눈이 없어서 새우가 제 몸에 붙으면 새우 눈을 빌려서 자기의 눈처럼 이용하여 산다.
그러다가 다른 어류가 새우를 잡아먹으러 오면 해파리는 보자기처럼 퍼져서 너울거리다가 다른 고기를 보쌈하듯이 싸서 고기를 잡아먹는다.
이처럼 중생의 세계는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고 사는 것이다.
산의 뱁새는 새끼를 깔 때 여러 마리의 새끼 중에 새매가 한 마리 섞여 까진다.
그것은 전생의 원수가 새끼로 태어나서 자란 후에 맘대로 먹이를 먹을 정도가 되면 어미 뱁새를 잡아먹는다.
또 올빼미는 알을 낳아 새끼를 까는 것이 아니라 흙덩이를 품에 안아 새끼를 까는데 과거의 원수가 새끼로 태어나서 어미를 잡아먹고 원수를 갚는다.
이렇듯 인과응보가 추호도 어김이 없는 것이다.
중생의 세계는 원수는 원수로 은혜는 은혜로 갚나니 이를 대수롭지않게 알아서는 안 된다.
원수를 원수로 갚지 않고 오직 원수를 은혜와 자비심으로 대하여야 그 원결은 마침내 풀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