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독거한절왕환 處獨居閒絶往還 홀로 한가히 사니 오가는 사람 없고
지호명월조고한 只呼明月照孤寒 다만 밝은 달을 불러 외롭고 쓸쓸함을 달래 본다네.
빙군막문생애사 憑君莫問生涯事 그대는 내 생애의 일을 묻지 마시오.
만경연파수첩산 萬頃煙波數疊山 앞에는 강물이요 뒤에는 첩첩한 산이라오.
유배지에서 지은 이 시는 조선조 연산군 때 성리학자 김굉필(金宏弼1454~1504)이 지은 것이다. 일찍이 김종직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힌 그는 성종 때 생원시에 합격한 것을 시작으로 벼슬길에 올랐으나 당파싸움의 정변 때문에 두 번이나 사화의 해를 입고 생애를 마쳤다.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난 뒤 평안도 의천에 유배 되었다.
유배지에서도 학문에 힘써 조광조에게 학맥을 전수하여 유학사의 정맥을 잇는 계기를 마련해 주고 1504년 갑자사화를 만나 극형에 처해져 생애를 마쳤다. 유학의 진흥을 도모하기 위하여 불교를 배척하기도 하였다. 나이 30에 이르도록 소학에만 몰두하다가 서른이 넘어 육경을 섭렵 대 학자가 되었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