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월하 日上月下 해가 뜨면 달이 지고
산심수한 山深水寒 산이 깊으면 물이 차네.
선시 가운데 가장 짧은 단구(短句)로 되어 있는 이 시는 일본의 유명한 백은(白隱)선사의 시다. 간명한 표현으로 단적인 핵심을 부담 없이 쉽게 표현한 이 시가 많은 사람들의 입에 회자한 것은 백은의 선지(禪旨)가 출중하였기 때문이다. 일본 임제종의 중흥조, 또는 현대 임제종의 아버지라고 불리던 백은혜학(慧鶴1685∼1768)은 24살 되던 어느 봄날 깊은 밤 좌선하던 중 먼 절의 종소리를 듣고 깨달았다고 한다. 그 뒤 다시 도경혜단(道鏡慧端)을 찾아가 그의 문하에서 더욱 정진하여 자기 공부를 확인 받고 도경의 인가를 받는다. 32세 때 처음 출가했던 절인 고향 정강현(靜岡縣)의 송음사(松陰寺)로 돌아와 후학 제접에 힘쓰면서 선풍을 드날렸다. 그에 얽힌 많은 일화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모두가 자비행(慈悲行)에 얽힌 이야기들이다. 일화를 소개한다. 추운 겨울 절 밖에 떨고 있는 거지에게 스님이 외투를 벗어 주었을 때 눈만 껌벅거리는 거지를 보고, “내가 옷을 벗어 주면 고맙다고 인사라도 해야지 왜 눈만 껌벅거리느냐”고 했더니 그 거지는 “스님이 내게 고맙다고 해야지. 내가 왜 스님에게 고맙다고 해야 하느냐?”고 말했다. 이에 스님이 “받은 사람이 준 사람에게 고맙다고 하는 거야”라고 말하자, 그 거지가 “나 때문에 스님이 선행을 하게 됐으니 스님이 나에게 고마워해야지요.”라고 대꾸하자, 스님이 “그래 그렇기도 하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는 것이다. 또 어떤 불쌍한 여자가 낳아서 절문 밖에 버린 아기를 거두어 키워주면서, 주위로부터 스님의 아이일 것이라는 오해를 받고도 끝내 변명이나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유명하다. 자신은 지극히 검소한 극빈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비행을 실천한 스님의 법덕을 그가 죽고 나자 더욱 흠모하게 되었다. 불법홍포를 위하여 송음사를 중창한 외에 관음사, 신무량사, 용택사 등 절을 창건하기도 했다. 84세를 일기로 메이지 5년에 입적하였다.
“해가 뜨면 달이 지고 산이 깊으니 물이 차다.” 이 말이 무슨 뜻인가? 사실 이 말에 굳이 뜻을 찾을 필요가 없다. 밤이 가면 낮이 오고 봄이 오면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단풍 드는 법. 배고프면 밥 먹고 목마르면 물 마시는 것. 바로 여기에 격외의 소식이 있는 것이다. 평범한 가상도리(家常道理), 진리가 별 것 아니다. 토끼 뿔을 찾거나 거북이 털을 구하는 것이 도가 아니란 말이다. 그러나 여기에 묘(妙)가 있다.
지안스님 해설. 월간반야 2003년 9월 (제3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