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죽피죽화거죽 此竹彼竹化去竹 이대로 저대로 되어가는 대로
풍취지죽낭타죽 風吹之竹浪打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반반죽죽생차죽 飯飯粥粥生此竹 밥이면 밥, 죽이면 죽 생기는 대로
시시비비부피죽 是是非非付彼竹 시시비비는 저에게 맡긴 대로
빈객접대가세죽 賓客接待家勢竹 빈객 접대는 가세대로
시정매매시세죽 市井賣買時勢竹 시정 매매는 시세대로
만사불여오심죽 萬事不如吾心竹 만사가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연연연세과연죽 然然然世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지나가는 대로 살리라.
이 시는 대‘죽(竹)’자를 이두 식으로 풀이하여 ‘대로’로 해석하는 특이한 시로 한시의 격을 무시한 파격 시다. 불가에서는 예로부터 이 시를 신라시대 부설(浮雪)거사가 지은 것이라 여겨왔다. 그러나 이 시가 김삿갓(김병연)의 시집에 수록되어 현재 전해지고 있다. 이는 후인이 김삿갓의 시를 수집하여 시집을 만들 때 일부의 시가 잘못 김삿갓의 시로 착각되어 포함되었으리라 여기고 있다.
부설 거사는 어려서 출가하여 불국사에서 스님이 되었는데 총명 영특하여 식견이 뛰어났다고 한다. 영조(靈照), 영희(靈熙) 두 스님과 도반이 되어 두류산에 가서 경론을 연구하고 법왕봉 아래 묘적암(妙寂庵)을 짓고 10년간 정진하다가 오대산으로 가던 도중 두릉(杜陵)의 백련지(白蓮池)에 있는 구무원(仇無寃)의 집에 며칠 머물다 주인의 딸 묘화(妙花)가 스님에게 연정을 품고 병이 나게 되어 구무원의 청에 의해 숙세의 업연을 어찌할 수 없다 하고 묘화를 아내로 맞아 들여 환속을 하여 거사로 도를 닦았다. 영조, 영희의 만류를 뿌리치고 세속에 남아 공부를 하다 아들 등운(登雲)과 딸 월명(月明)을 낳고도 도를 이루었다고 한다. 죽은 뒤 영조, 영희 두 스님이 찾아와 화장을 하고 사리를 수습하여 묘적암 남쪽에 부도를 세웠다.
요산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2월 제85호
세월죽 해석은 시세대로 라기 보다는 해세,달월 이므로 장사꾼이 (계산)해달라는대로 라고 보아야 될듯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