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마조스님의 문하에는 약 130여명의 제자가 나왔는데, 그 중 ꡐ대매법상(大梅法常, 752~839)ꡑ 이라는 스님이 계셨습니다. 그는 일찍이 온갖 경전에 통달하였지만 마음을 깨치지는 못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승을 찾아다녔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마조스님을 만나게 되어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던 것을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마조스님은 ꡒ네 마음이 곧 부처다. 즉심즉불(卽心卽佛)ꡓ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부처를 묻는 네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입니다. 이 대답에 법상스님은 그동안의 의문이 다 풀리고 크게 깨닫습니다.
선가(禪家)에서는 “장부는 스스로 하늘을 찌르는 기운이 있거니, 여래(부처)가 가는 길을 가지 않는다(丈夫自有沖天氣 不向如來行處行)”는 말이 있습니다. 불교공부의 구경목표는 해탈입니다. 해탈은 그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대자유자재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부처니 조사니 하는 것은 모두 중생의 병을 낫게 하는 약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병이 다 나으면 약이 필요 없듯이 참다운 해탈을 이루고 나면 부처도 조사도 필요 없다는 말입니다.
또 『화엄경』에서는 “마음과 부처와 중생, 이 셋에는 차별이 없다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고 하여 우리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는 선근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마음을 깨치기 전에는 중생이라고 말하지만, 깨치고 나면 모두가 부처님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으므로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해스님 글. 월간반야 2004년 10월 제47호
○인해스님은 팔공산 동화사 강원의 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