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문화

사람이 집을 떠나 여행을 해보면 자기 집과 가족의 소중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제 나라를 떠나 타국에 가면 다들 애국자가 된다고 한다. 누구나 여행을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겪는 문제는 먹는 것과 자는 것, 그리고 배설의 문제일 것이다. 일행들 가운데는 잠자리가 바뀌면 제대로 숙면에 들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았다. 그런가 하면 물이 바뀌고 음식이 바뀌면 아예 먹지를 못하든지 배탈이 나서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당장 자동차나 기차, 비행기로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일행과 더불어 단체로 이동을 할 때에 이런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것이다.

건강한 사람도 마찬가지다. 성지 순례 차 인도를 여행해 본 사람은 다 겪어본 일이겠지만 허허벌판을 몇 시간씩 달리다 보면 생리현상을 잘 아는 안내자가 한적한 들판에 차를 세우고는 볼일을 보라고 하는데 화장실 시설은 상상할 수도 없고 적당히 해결하라고 하면 어쩌겠는가. 남자들이야 돌아서면 아쉬운 대로 가능하지만 여자들은 담요 같은 걸 가지고 다니면서 해결하기도 하지 않던가. 그래도 하는 체면차림의 마음에 풀숲 쪽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안내인이 “지뢰 조심!” 한다. 이런 곳에 ‘지뢰’는 무슨 지뢰? 아니나 다를까. 사람이나 짐승들의 배설물이 곳곳에 늘려 있으니 조심하란 뜻이란다.

일전에 십여 일 간 동유럽을 다녀왔다. 서너 해 전에 친구들과 어울려 만든 부부동반 해외여행팀이 있다. 이름하여 ‘나이야 가라’. 굳이 영어로 표기하면 ‘Niagara’. 다들 열심히 살아왔으니 늘그막에 즐겁게 여생을 보내자고 다짐한 모임이다. 20여 명이 독일 뮌헨으로 들어가서 체코와 폴란드, 슬로바키아와 헝가리, 오스트리아를 거쳐 다시 뮌헨을 돌아와 귀국하였다. 지금도 소름이 끼치는 ‘나치의 유태인과 장애인 학살 및 생체실험’이나, ‘여유로운 자연환경’과 ‘문화예술’에 대한 부러움은 아마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것이다.

이번 여행에서 일행들이 모두 공감했고 서운했던 일화가 바로 독일의 화장실 문화였다. 10여 년 전 독일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는데, ‘라이카’회사(주로 카메라 망원경 따위의 렌즈 생산)를 방문하러 시원하게 뚫린 ‘아우토반’을 달리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 들렀는데 화장실에 가니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처음에 참 황당했다. 우리의 문화, 우리의 상식으론 이해가 되질 않았다. 안내인의 설명으론 당시 독일이 세계 제3위의 경제대국으로 군림하다가 동ㆍ서 독일이 합쳐져 ‘통일’이 되었지만 과다한 통일비용 때문에 국가 재정이 어려워 얼마 전부터 휴게소 화장실이 유료화 되었다고 했다. 그래도 그렇지. 휴게소의 공중화장실까지…. 하면서 볼일을 본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엔 한술 더 떠서 ‘식당’의 화장실 사용까지도 돈을 내라는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관광지라 그런지 ‘유료’화장실이 대부분이었다. 이러니 ‘무료’화장실 안내를 잘 하는 것도 ‘유능한’ 안내인이 되는 조건 중 하나가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가 식사한 식당에서 ‘물’은 철저하게 사 먹었지만 ‘화장실’ 사용은 ‘공짜’였다. 여행 마지막 날, 우리는 ‘뮌헨’ 시청 광장에서 정오의 종소리와 세 번의 목쉰 닭 울음소리를 듣고는 점심식사를 하려고 청사 바로 옆의 대형 식당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으니 ‘돈’을 받기 위해 한 여자가 지키고 있었다. 불평불만이 쏟아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단순한 ‘근검절약’이 아니라 ‘철저한 깍쟁이’ 독일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래도 변명이라도 들어야 하겠기에 현지 안내인에게 따져 물었더니 ‘사용료’가 아니라 ‘봉사료’(?)라나.

다시금 우리나라의 화장실이 떠올랐다. 예전에는 한국 전통 측간의 모습이 수거식 뒷간이나 아직도 사찰에서 남아있는 해우소(解憂所), 잿간(뒤간에 아궁이의 재를 같이 섞는 곳), 통시(똥돼지 뒷간) 등이 있지만, 최근에는 서구의 수세식 변기의 바탕 위에 우리는 새로운 화장실 문화를 꽃피우고 있다. 이즈음 우리나라의 공중화장실은 가히 세계 제일이라고 단정하고 싶다. 공원, 운동장, 공공시설 등 어디를 가도 남ㆍ여 화장실, 양변기ㆍ화식변기, 어린이용, 장애인용 등이 구분되어 있고, 벽면의 액자까지 갖추고 있다. 또한 ‘이동식화장실’에도 냉ㆍ난방기, 핸드드라이어기, 물비누, 위생시트까지 비치하고 있는 곳이 늘고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엔 샤워실과 세면실, 사물함 등을 볼 수도 있다.

최근에 대만의 한 공영방송이 우리나라의 화장실 문화를 탐방 보도한 프로그램까지 나왔다고 한다. 이 방송은 “한국의 화장실은 위생안전을 넘어 미관과 창의까지 ….” 라고 찬사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의 소박한 욕심은 위생적인 시설에다 무료(?)로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독일을 비롯한 서구가 과학 기술을 바탕으로 한 시설로 우리를 앞섰지만 이제는 시설도 인심도 결코 우리를 앞설 수 없게 되었다. 이 자부심이 빨리 다른 분야에까지 확산되길 염원해본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9월 1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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