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음미

전쟁과 평화는 반대말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평화를 누리고 있는가 아니면 전쟁상황에 처해 있는가. 어느 상황까지가 전쟁이고 어느 상황까지가 평화인가. 이즈음 한반도는 이라크와 더불어 온 지구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먹구름은 좀처럼 걷힐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잇는데 오히려 이라크전이 터질 경우 북한의 오판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한반도 주변으로 병력을 이동 배치할 준비를 하고 있다.

거기에다 나라 안은 대통령 선거와 정권 교체기를 맞아 어수선할 대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미국과의 관계가 아주 껄끄러워져 있다. 한국내의 반미 시위와 미국내의 반한 분위기 등이 맞물리면서 한ㆍ미관계는 중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그 상황의 심각성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상태다. 우리 정부나 언론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미국 내에서 일고 있는 주한미군 철수론이 한반도에 가져올 파장을 생각한다면 지금쯤 우리나라는 심각하게 대응논리를 찾고 대처해야 할 것인데도 우리는 그 실상도 모른 채 태평이다.

오래 전 외국잡지에서 인용한 글 가운데 ‘지구상에서 한국인만큼 간이 큰 민족은 없다’는 글을 읽었다. 현재 남북한을 합치면 한반도에 쌓여 있는 재래식 무기만 하더라도 지구 전체를 파괴시킬 수 있는 정도의 화력인데 이 화약고 위에서 태연히 먹고 자고 생활하는 것을 보면 가장 간이 큰 민족임에 틀림없다는 말이다. 이 재래식 무기에다 미사일을 보태고, 핵을 더하고, 생화학무기까지 있으니 소심한 민족이라면 한반도 전체에다 철조망을 둘러치고 ‘접근금지’ 팻말을 곳곳에 붙여놓고 중무장한 군경들로 하여금 철통같은 경계를 서게 했을 것이다.

왜 우리는 전쟁이든 평화든 상황을 사실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렸을까. 왜 우리의 감각은 이다지도 무디어졌을까. 우리나라의 시나 군 단위의 자치단체마다 ‘충혼탑’이 세워져 있지 아니한 곳이 있는가. 우리 산하의 곳곳에 서 있는 ‘전적비’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곳저곳에 서 있는 ‘전쟁기념관’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

6.25 때에 우리나라에 와서 피흘린 외국인들의 ‘참전기념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동작동이나 대전의 국립묘지를 지나면서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그 참혹한 전쟁을 겪은 지 불과 50년인데. 보훈병원에서 신음하는 전상자들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누리는 평화스런 분위기는 진정한 평화인가. 우리가 원하는 평화는 진정 어떠한 것인가. 뒤늦게나마 한반도의 반전, 반핵, 평화를 호소하는 평화행진을 보면서 자라나는 세대ㆍ후손들이 걱정스럽다.

김형춘 香巖 글/ 월간반야 2003년 2월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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