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옛 어른들 말씀에 “보리 누름에 중늙은이 얼어죽는다”고 하였다. 아직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려면 제법 기다려야 한다. 통상 절기 상으로 ‘망종(芒種)’에 햇보리를 먹으니까 ‘소만(小滿)’ 무렵이면 보리가 누렇게 변하니 한 달 가까이 기다려야 한다. 날짜로 보면 5월말쯤 되니까 아직도 추위를 걱정해야 할 판이다.
올해 초의 장기 기상예보로는 예년보다 우리 남부지방에서는 벚꽃이 1주일쯤 빨리 핀다기에 귀한 손님을 4월초에 모셨는데 꽃이 피지 않아 곤혹스러움을 겪었다. 날씨의 변화가 종잡을 수 없기에 기상 당국도 어려움이 많겠지만 예보를 믿고 일을 계획하는 사람의 입장에선 황당할 따름이다. 매년 이맘때쯤은 주문한 녹차가 배달될 때도 되었기에 생산 농가에 전화를 했더니 날씨가 예년에 비해 추워서 아직 찻잎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았다고 한다. ‘청명’ 전후의 ‘명전’이 아니라도 ‘곡우’ 전후의 ‘우전’ 맛이라도 보아야 할텐데 아직 소식이 없다.
일전에 인근 도회에서 30여 년 간의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남덕유산 자락의 고향으로 낙향한 지인이 찾아와 차담을 나눈 적이 있다. 3년째 시골생활을 하면서 건강하고 생기 있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이야기 중에 “산에 사니까 춘추복이 필요 없다”고 했다. 물론 일할 때 입는 작업복은 모두 동복(冬服)이라고 했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가 싶으면 더워서 하복을 입어야 하고, 여름의 무더위가 가는가 싶으면 추위를 느껴 겨울옷을 꺼내 입어야 한다고 했다. 춘하추동(春夏秋冬)의 사계절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름과 겨울이 있을 뿐이라고 했다.
중국 한나라 때 오랑캐에 끌려간 궁녀 ‘왕소군’의 비애를 노래한 ‘동방규’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고 했던가. ‘봄이 와도 진정 봄 같지 않다’고 한 것은 계절의 봄보다는 중국의 4대 미녀 중의 한 사람인 ‘왕소군’을 오랑캐에 빼앗긴 아쉬움(?)을 계절에 비겨 표현한 것이 아닐지.
올해 봄 날씨로 보면 남부지방에서는 비가 잦고 예년에 비해 기온이 낮아 농작물에도 많은 피해가 있다고 한다. 예전에는 기상이변도 천재지변으로 하늘 뜻이거니 생각하면서 백성들이 묵묵히 받아들였지만 요즈음 농어민들은 반대다. 국가에 대해서,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보상을 요구하는 실정이다. 그런데 장기적인 관점에선 ‘지구 온난화’가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 좁은 땅덩어리라서 그런지 수목의 분포나 농작물 재배 지역의 변화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남부지역에 한정되어 있던 밤이 중부지방에서도 재배되고, 사과의 재배지도 북상하는가 하면, 죽변ㆍ죽암 등의 지명에서 보여주던 대나무의 자생지도 서서히 북상한다고 한다. 이미 남부지방에서는 오래 전부터 아열대 식물들을 들여와 재배하고 있는가 하면, 바다에서도 수온의 상승으로 제주 근해 등 남쪽바다에서 잡히던 갈치와 같은 어족이 남해안으로 이동하였고, 저온의 한류를 따라 이동하던 명태와 같은 어족이 우리 동해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구 온난화 현상은 우리만의 국지적 현상은 아니다. 연전에 캐나다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록키산맥을 따라 빙하지대를 찾은 적이 있다. 여기 저기 남아 있는 만년설의 모습을 보면서 안내자가 빙하의 모습을 설명하면서 오래 전에 이 지역에 살던 인디언들이 붙인 이름을 소개하여 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이 빙하가 녹아 내리는데도 그들이 붙여놓은 이름은 그대로라는 데 있었다. 우리 일행들은 웃으며 이의를 제기하고 안내자더러 당신이 새로운 빙하의 이름을 붙여보라고 권한 적이 있었다.
날씨가 좀 더워져도 또 좀 추워져도 인간의 삶에 크게 영향은 없을 것이다. 이즈음의 과학 기술문명은 추우면 난방을, 더우면 냉방 시설을 통해 쾌적한 환경으로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 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생태환경이다. 이들은 인간의 뜻대로 변화되지도 않고 그들 스스로 환경을 변화시킬 능력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간의 능력이 무한해도 자연을 지배 정복할 수 없고, 자연의 일부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연을 떠난 인간을 생각할 수 없기에 우리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지구환경을 후손에게도 잘 보존하여 물려줄 의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5월 11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