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나라

우리나라의 가을은 결실의 풍요로움과 이에 대한 감사의 축제 계절이다. 예전에는 산업이 단순히 농업에만 의존해 왔기에 추수 감사의 뜻으로 가을에 첫 수확한 햇곡식으로 제천의식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이즈음은 산업도 다양해졌지만 농작물의 수확도 정해진 계절이 없어졌고 축제의 종류도 각양각색이다.

지금의 축제는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후 더욱 다양해졌고 많아졌다. 경상남도만 하더라도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축제의 수는 아흔일곱개나 된다. 기초자치단체인 시ㆍ군에서는 너 나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축제를 만들어 인근의 시ㆍ군들과 더불어 일년 내내 축제 분위기다. 축제의 유형도 다양하다. 각 시ㆍ군에는 시ㆍ군민의 날이 있는데 이와 때맞춰 열리는 문화예술체육 대회는 기본적으로 어느 곳이나 다 있고, 지역의 문화예술단체나 문화원 등이 주관하는 예술제가 있고, 지역의 특산물을 홍보하는 행사의 성격이 짙은 도자기ㆍ단감ㆍ수박ㆍ미더덕ㆍ전어ㆍ고로쇠ㆍ야생차ㆍ사과ㆍ국화축제도 있다. 자연환경을 배경 삼아 관객을 끌어 모으는 벚꽃ㆍ진달래ㆍ온천ㆍ철쭉ㆍ공룡화석ㆍ억새축제가 있는가 하면, 역사나 문화유산을 내세워 한산대첩ㆍ당항포대첩ㆍ옥포대첩ㆍ의병ㆍ3. 15ㆍ오광대ㆍ서원ㆍ소싸움ㆍ연날리기ㆍ팔만대장경ㆍ표충비각ㆍ선비문화축제도 있다. 그런가 하면 역사 속의 인물의 출생지나 연고가 있는 지역에서는 이들을 내세워 노산ㆍ남명ㆍ논개ㆍ사명당ㆍ김달진ㆍ충무공제전을 개최하기도 한다.

이렇게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잔치를 벌이는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순수하게 문화예술의 진흥이나 주민의 단합은 물론 사기의 앙양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가 하면 지방자치의 가장 중요한 조건인 자치재원 즉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한 경제적 이유도 큰 몫을 차지한다. 지역의 새로운 문화유산의 발굴도 가능할 것이며, 이를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역할도 한다. 체력 증진이나 교육적 효과를 통한 후손들의 자긍심 고취에도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행사에는 순기능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대개의 경우 이들 행사는 천편일률적이고 대동소이하다. 체육대회가 있고, 전시회가 있고, 먹거리 장터가 있는가 하면 각종 물건을 파는 장사꾼들이 동원된다. 이들은 전국의 축제현장을 누비고 다니는 프로 장사꾼이다. 축제가 있는 곳에는 바가지 상혼이 항상 기다리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 이곳 축제나 저곳 축제나 다를 바 없다. 행사자체의 진부함이나 비창의적인 기획은 한번은 보러 갈지 모르지만 두 번은 속지 않는다.

이제 축제도 좀 달라져야 할 때가 되었다. 무조건 행사를 벌려놓고 보자는 식도 안 된다. 가능하면 행사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고 알차게 치러야 한다. 자치단체장들이 혹시나 이런 행사를 벌여놓으면 다음 선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불필요한 예산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시민의 혈세를 아껴야 한다. 얼마 전 어느 고을 의 자전거축제의 일환으로 준비되었던 공연장에서 일어난 사고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축제는 축제다워야 한다. 그러려면 지역 주민이 가능한 많이 참여해야 한다. 소수의 요원이 기획하고 진행하고 참여하는 행사에 주민은 들러리이고 구경꾼이어서는 안 된다. 많은 주민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모자를 쓰고 나오든지 손수건을 흔들든지 아니면 독특한 신발을 신고 나오더라도 같이 참여해야 한다. 행사 내용도 창의적이고 좀 독특한 게 있어야 한다. 그곳 축제에 가지 않으면 볼 수 없다거나, 이런 놀이는 그 지역 축제가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물건을 믿고 싸게 살려면 그곳 축제에 가면 된다는 믿음을 주는 행사가 될 때 그 축제는 성공한 축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김형춘 글. 월간반야 2005년 11월 제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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