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초캐다가 갑자기 길을 잃었네

채약홀미로 採藥忽迷路 약초 캐다 갑자기 길을 잃었네.

천봉추엽리 千峰秋葉裏 온 산이 단풍잎이 물든 속에서

산승급수귀 山僧汲水歸 산에 사는 스님은 물을 길어 가더니

임말다연귀 林末茶烟起 차를 달이는지 숲 끝 저쪽에 연기가 난다.

가을이 되어 온 산이 단풍이 물들더니 어느새 낙엽이 진다. 약초를 캐러온 사람 하나 망태를 둘러메고 낙엽을 헤치며 약초를 캔다. 그러다가 이젠 돌아가자 하고 산을 내려오려 하는데 그만 낙엽이 쌓여 길을 잃었다. 잠시 서성이며 어디로 가야할까 방향을 찾는데 저만치 물 길어 돌아가는 스님이 지나간다. 절로 따라갈까 하다가 저물기 전에 산을 내려가야겠다고 두리번거리며 길을 찾는데 숲 끝의 저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가을 산에 감추어진 사연 하나가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 시는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지은 산중이라는 제목의 시이다. 조선조를 대표하는 대학자였던 그도 한때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된 적이 있었다. 19살 때 들어가 불과 1년을 있다가 20살 때 환속했지만 그때의 승명이 의암(義庵)이라고 전해진다. 그는 학문을 좋아하여 여라 차례 과거에 응시, 번번이 장원급제를 하여 아홉 번을 급제하였다. 퇴계(退溪)와 쌍벽을 이룬 대학자이면서 우국충정이 남달리 뛰어났었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이순신을 지지하면서 문인으로써 전쟁 승리의 숨은 공을 남기기도 하였다. 그가 나라의 장래를 걱정해 10만양병설을 주장하였지만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아 결국 왜구의 침입을 받아 치욕스런 국난을 당하고 만 비운의 역사가 만들어져 버렸다.

지안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11월 제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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