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힘(政治力)

올해는 하늘의 문 가운데서도 전직 대통령이 올라가는 문이 열렸나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따라서 타계하였다. 또 한 사람의 전직 대통령도 병이 위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국장이니 국민장이니 하여 국무총리가 또 조사를 읽으려나. 예전에는 대독(代讀)총리라는 말이 유행하였는데 올해엔 조사(弔辭)총리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지존이라 할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면 평범한 인간이면 누구나 갖길 원하는 권세(權勢)도 명예(名譽)도 부(富)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야 정작 그 자리의 의미를 알 수 있으리라. 이번에 타계한 전직 대통령도 그 나름의 카리스마에 걸맞게 권력을 행사하였고, 노벨 평화상을 받았으니 명예 또한 누렸으며, 세간의 이야기로는 부(富)도 누렸다고 들었건만 과연 만족하며 평화로운 심경으로 죽음을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얼마전 모 시사주간지와 미디어리서치가 공동으로 전국의 만 19세 이상인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직업신뢰도조사’에서 총 33개 직업군 중에서 정치인이 최하위인 33위를 차지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어느 정도 예상한 일이었지만 한마디로 우리 정치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사실을 확인한 것 같아 씁쓰레한 감을 지울 수 없었다. 내용인즉 정치인을 매우 신뢰한다 ; 1.9%, 대체로 신뢰한다 ; 9.8%를 합친 11.7%가 정치인의 성적표다. 반대로 전혀 신뢰하지 않는다 ; 53.7%, 대체로 신뢰하지 않는다 ; 32.8%를 합치면 86.5%가 정치인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하였으니 이야말로 정치의 심각한 위기라 하겠다.

현재의 18대 국회가 출범할 당시에는 초선 의원들의 대거 진입 등 나름대로 기대도 있었는데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82일 만에 개원을 하고, 문을 열고도 42일간이나 의장을 뽑지 못하는 등 급기야 국회무용론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배타적인 정치, 대결하는 정치, 힘의 정치 등 구태의연한 모습만 계속 보여주고 있다.

이제 국민의 정치의식 수준이 여의도를 넘어섰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뿐만 아니다.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다투고 대결하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등 추태를 보이는 것도 모자라 국민을 우습게 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다음 선거 때에는 자기가 소속된 정당의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의식이 더 문제다. 여기엔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정치를 이끌어 왔던 기성정치인들이 지역주의를 부추기는 등 커다란 죄악을 저지른 것도 큰 한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앞서의 직업신뢰도 조사에서 나타난 자료 중 상위에 있는 직업군을 살펴보면, 1위 소방관 2위가 간호사 3위는 환경미화원, 4위는 프로선수 5위 의사, 이어서 한의사 초중고 교사, 은행원 이ㆍ미용사 등의 순이었고, 30위 밖은 보험업 종사자, 부동산 중개업자, 정치인 순이었다. 이 조사 결과의 해석에서 눈에 띤 부분은 남에게 봉사하고, 친절하게 남을 예우하는 직종이 보수나 하는 일의 난이도나 지적 수준 등에 관계없이 선호한다는 점과, 교육과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 심하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정치인은 우리 사회의 온갖 비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가 하면 당리당략에 따라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 것이 불신을 가중시킨 것이라고 보았다.

언제나 우리 국민들이 정치인에게 바라는 바는 한결같다.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선거를 하다보면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을 것이다. 때로는 여당이 되기도 하고 야당이 되기도 한다. 무조건 이겨야 하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들의 주장과 논리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당신들의 면전에서도 그렇지만 돌아서서 비웃고 있는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야 한다. 배타적이고 대결하여 힘으로 상대를 굴복시키기 보다 타협하고 조정하고 화합하여 상생하는 정치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것이 정치의 힘, 곧 정치력(政治力)이다. 이제는 힘의 정치보다 정치의 힘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여기에다 국민을 두려워하고 섬기는 마음가짐을 덧붙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해방 후 60여 년 민주주의 연습도 해 봤고,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정치인들도 하나 둘 떠나가는 걸 보면서 권력과 명예와 부의 무상함을 알 때도 된 것 같다.

김형춘 교수님 글. 월간 반야 2009년 9월 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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