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精進)의 계절

다시 또 정진의 계절이 되었다. 며칠 전부터 올해의 동안거(冬安居)가 시작되었다. 지금 전국의 각 선방은 이번 안거를 통해 깨침의 경지에 다가서려고 하는 수천 수좌들의 결의로 긴장감마저 감돌 분위기에 싸여 있을 것이다. 늘상 이맘때면 이름만 불자라고 해놓고 선방 근처에도 못 가본 중생중의 중생은 자괴감을 금치 못한다.

그러면서도 정진에 얽힌 추억 한 토막 때문에 피식 웃곤 한다. 20여 년 전으로 기억된다. 꽤나 똑똑한 제자 한 녀석이 있었다. 관광과를 나와 관광호텔의 프론트에 근무했으니 인성도 외국어도 별 나무랄 데가 없는 여자아이였다. 그런데 어린 아이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녀석이 어느 날 전화를 하고는 연구실로 찾아오겠다고 하였다. 직장이나 졸업생들 간에 무슨 일이 있겠지 하고는 그러라고 했다. 그런데 약속 시간에 나타난 이 아이는 혼자가 아닌 남자를 그것도 결혼을 할 신랑감이라면서 소개를 하고는 다짜고짜로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었다. 40대 중반의 중늙은이(?)가 어쩔 수 없이 진땀을 흘리며 주례를 선 것까지는 좋았다. 다시 1년여가 지나고 찾아와서는 아들을 낳았으니 이름을 지어달라고 졸랐다. 우리 아들딸의 이름도 가족회의에서 합의하여 지은 내가 작명의 ‘作’ 자도 모르면서 남의 귀한 아들의 이름을 지을 수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지만 이들 또한 막무가내였다. 할 수 없이 또 궁여지책을 찾은 것이 그러면 한글로 이름을 지어도 좋으냐고 물었더니 그러면 더 좋다고 했다.

며칠 동안 고민은 계속되었다. 이름은 의미도 중요하지만 부르기도 좋아야 한다. 이름만 따로 부르지 않고 성과 같이 부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아비의 성이 ‘정’씨 였기에 고민하다가 이름을 ‘진함’으로 하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얻었다. 한자로는 쓰지 않고 그저 한글로 성과 이름을 붙이면 ‘정진함’이었다. 성과 이름을 합친 의미는 ‘精進하다’의 이름꼴인 셈이다. ‘정진하다’는 말은 원래 불교에서 비롯되었지만 ‘정력을 다하여 나아감, 열심히 노력함, 몸을 깨끗이 하고 마음을 가다듬음’의 뜻이 있다. 불교적으로는 ‘악행을 버리고 선행을 닦음, 세속의 인연을 끊고 불도에 귀의함’의 뜻을 갖고 있다. 이름만 따로 떼어낸 ‘진함’도 ‘진하다’의 이름꼴이니 그 뜻은 ‘액체의 농도가 높다’, ‘빛ㆍ화장이 짙다’는 의미의 이름꼴이니까 좀은 예사롭고 평범하기보다는 강인한 인상을 준다. 이름을 뜻과 같이 새겨주었더니 꽤 좋아라 했다. 그 뒤에도 전화로 안부를 물을 때면 언제나 ‘진함이 아빠입니다.’로 자기를 표현하곤 했다.

얼마 전 교사불자회의 법우들과 같이 읽었던 팔리어 번역본인 「대반열반경」에서 부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가르침도 이 ‘정진(精進)’이란 걸 알았다. “비구들이여, 이제 주목하라. 나는 너희들에게 권고한다. 조건지어진 모든 것은 쇠멸(衰滅)한다. 너희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완성시켜라.” 고 하신 점이나 ‘사정근(四正勤)’ 또는 ‘사정단(四正斷)’은 팔정도(八正道)의 ‘정정진(正精進)’에 해당하는 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선(善)을 생기게 하고, 이미 일어난 선을 증대시키며, 아직 일어나지 않은 악(惡)을 생기지 않게 하고, 이미 일어난 악을 소멸시키는 것’을 보면서 ‘정진’의 의미나 정진해야 하는 이유를 다시금 깨달았을 때엔 서투른 작명가의 등줄기에 땀이 흘렀다.

김형춘 香岩 (반야거사회장·창원전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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