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雨夜鳴竹(산우야명죽) 산속에 비 내려 밤새 대숲을 울리고
草蟲秋近床(초충추근상) 풀벌레 소리 침상 가까이 들리며 가을을 알린다.
流年那可駐(유년나가주) 흐르는 세월을 어찌 머물게 할 수 있으랴
白髮不禁長(백발불금장) 흰머리 길어짐을 막을 수 없구나.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올 때 산속에 살다보면 곧잘 가는 세월 무상이 느껴질 때가 많다. 무성했던 나뭇잎이 퇴색하면서 산색이 변하며 얼룩진 단풍이 시작될 때쯤 밤이 되면 서늘한 냉기가 골짜기를 휘감아 흐르며, 침상 가에 풀벌레 소리가 들려온다. 생각은 이미 온갖 상념을 실은 사색의 날개가 되어 밤하늘을 타고 멀리 날아가 보기도 한다. 사람에 따라 공연히 인생이 서러워져 눈물이 나려할 때도 있을 것이다.
가을에 관한 한시 한 편을 찾아 읽으며 번역해보았다. 조선조 중기 문인이자 정치가였던 정철(鄭澈, 1536~1593)의 시이다. 흐르는 세월 속에 늙어가는 인생의 무상감을 술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