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과 글에 대한 사랑

조선조의 대표적인 이야기꾼이요 정치가였던 서포 김만중은 ‘사람의 마음이 입으로 나오면 말이 되고, 말에 가락이 붙으면 가시문부(歌詩文賦)가 된다’고 하여 생각과 말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오늘날의 여러 서양의 언어학자와 철학자들도 한결같이 ‘언어는 인간정신을 그대로 본떠 놓은 것’ , 또는 ‘말이 없으면 이성도 없고 따라서 세계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과 사람의 마음과는 같은 것의 안팎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처럼 말과 생각이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 우리의 겨레말과 겨레얼도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겨레란 피와 문화를 함께하는 모임이며, 피는 겨레가 함께 탄 것이고 문화는 겨레가 함께 애지은(창조한)것인데 겨레의 말은 곧 그 겨레가 함께 애지은 문화의 한가지로 모든 문화의 바탕인 것입니다. 이 말로써 애지은 문화에는 겨레의 얼이 그대로 깃들어 있음은 물론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가장 큰 문제는 이시대 우리들 모두가 공감하는 가치관이 없다는 점이라 하겠습니다. 우리 역사가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우리는 고유의 전통적인 가치관의 갈등과 파괴의 모습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아야 했습니다. 전통적인 가치관은 붕괴되고 새로운 가치관은 채 만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우리 의식의 오염과 붕괴는 이 시기만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땅에 한자가 들어오면서부터 시작되었고, 뒤이어 영어·일본어·러시아어 등에서 시작하여 일제 침략기를 거치고 동족상잔의 6·25를 맞아 우리 한반도는 세계언어의 전시장이 되다시피 하였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겨레얼의 오염의 역사는 우리말글 오염의 역사라고 보아도 좋겠습니다. 우리말이 오염되면서부터 우리얼이 오염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말과 생각이 깊은 관계가 있다면 겨레말과 겨레얼이 깊은 관계가 있음은 물론이요, 나아가 국어와 국민정신이 밀접한 관계가 있음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우리 겨레의 가장 큰 현실적 고민이 가치관의 부재라는 이른바 국민의식의 오염이라면 우리의 지상과제는 국민정신의 순화라고 하겠습니다. 이 국민정신의 순화는 여러가지 해결 방법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국어를 순화하는 것입니다. 우리말과 글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리얼을 가꾸고 지키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단순히 내나라 말글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민정신을 순화시키기 위하여 우리말글에 대한 애착을 갖자는 것입니다.

최근에 특히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이버공간의 언어는 이러한 측면에서 더욱 걱정스럽습니다. 상대방이 앞에 있을 때의 말하고 듣는 것과 상대방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함부로 한다는 것도 문제지만,

표준어도 정서법도 무시한 언어행위는 반드시 고쳐야 합니다.

이러한 말글의 이면에 우리의 정신세계가 도사리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1년 4월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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