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다리는 짧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모두가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개체적으로 드러나 있는 삼라만상이 고유한 자기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예를 들면 소나무는 소나무의 모습이 있고 느티나무는 느티나무의 모습이 있다. 또 학의 다리는 본래 길고 오리 다리는 본래 짧다. 두두물물이 개개의 존재로 이것은 저것이 아니고 저것은 이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나는 너가 아니고 너는 내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것은 유일한 존재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존재의 영역에서 보면 이 점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강변에 밀려 쌓여있는 모래알이 어느 것도 똑 같은 것이 없다. 비록 디자인과 칼라가 똑같이 만들어진 공장의 제품이 있다 하더라도 낱낱이 자기 값을 가지고 있지, 모양이 같다 해서 특정의 하나에만 값을 매기고 나머지는 값을 줄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하나의 존재는 그 존재만이 갖는 자기 값이 있기에 존재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존재의 가치에 대한 의식이 혼돈되고 있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 가치의식에 대한 진정한 견해가 바로 서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고 내 비위에 맞는 일에는 가치가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남은 좋아 하지만 내가 싫은, 내 비위에 맞지 않는 일에 대해서는 그것이 아무 가치가 없는 몰가치한 것이라고 엉뚱한 판단을 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래서 사람들은 자기 가치만 주장하다가 남의 가치를 빼앗아버리는 일방적 자기 우월주의에 빠져버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상식적으로 볼 때 가치에는 보편타당한 유용성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가치의 우열을 논하며 취사선택을 좋아하는 사람의 그릇된 사고방식 때문에 가치가 전도되어 유용한 것을 싫어하고 무용한 것을 더 좋아하는 아이러니컬한 일도 많이 일어난다.

이솝 우화에 사슴과 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침부터 숲속을 돌아다니던 사슴은 목이 말라 샘을 찾던 중 맑은 물이 흘러나오는 샘을 발견하고 속이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사슴은 물을 실컷 마시고도 그 샘을 떠나지 않고 맑은 물을 들여다보다가 자기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은 나뭇가지처럼 멋지게 사방으로 뻗은 뿔이 아주 근사했고 그건 짐승의 왕인 사자에게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던 사슴이 물에 비친 뿔에 비해서 다리가 가늘고 길기만 한 것을 보고는 몹시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사슴은 자랑스러운 뿔도 이 보기 싫은 다리 때문에 자랑하러 다닐 수 없다고 다리를 원망하고 있었다.

이때 어디서 왔는지 사자 한 마리가 샘 가까이에 다가와서 곧 잡아먹으려는 듯 사슴을 노려보고 있었다. 사슴은 뛰는 데는 자신이 있었으므로 마구 달아나기 시작했다. 사자가 뒤따라 달려왔지만 사슴은 사자의 추격을 피해 멀리 달아나 잡아먹힐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무들이 우거진 숲 사이로 뛰어가던 사슴이 나뭇가지처럼 뻗어난 뿔이 나뭇가지에 걸려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숲 속이라 빽빽이 우거진 뿔이 걸려 꼼짝 못하고 서 있는 사슴을 보고 사자는 천천히 그의 앞으로 다가왔다. 뿔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다리를 못 생겼다고 생각한 사슴은 그 못생긴 다리 때문에 목숨을 건지게 되었는데도 그 근사하고 예쁜 뿔 때문에 사자에게 잡아먹히게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

이 우화는 인간의 그릇된 가치판단에 대한 경종을 울려주는 우화이다. 진리의 본질에서 볼 때 이 세상에는 가치 없는 것은 없다. 때문에 구조적 연관성에서 보면 모든 가치는 평등한 동급의 가치를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 된다. 집 한 채를 지을 때 필요한 것은 모두 있어야 한다. 기둥만 있고 서까래가 없어도 안 되며 벽만 있고 지붕이 없어서도 되지 않는다. 물론 어떤 것이 비중이 더 크느냐의 우열이 있을 수 있지만 부분의 역할을 구분하여 볼 때에는 어느 것이나 똑같은 자기 역할이 있는 것이므로 상대적 가치를 인정하고 서로의 조화를 꾀해야 전체의 모습이 살아난다. 내 스스로가 부여하는 진정한 의미가 있는 일이 있을 때 가치는 저절로 만들어 지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가치창조라는 것이 삶의 질적인 수준향상이며, 동시에 자신을 개발하는 수행의 의지이기도 한 것이다. 무용지물로 버려진 하찮은 쓰레기도 얼마든지 새로운 가치물로 쓰여 질 수도 있다. 쓰레기 더미 위에서 꽃이 피었다면 그 쓰레기가 썩어 꽃을 피우게 한 거름의 역할을 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혜로운 생활을 잘 해가려면 숨어 있는 가치를 찾아내어 응용을 잘 해야 한다. 아직 내 자신에게도 내가 찾아내지 못한 숨어 있는 가치가 있는 법이고 또 내 주위의 내가 처한 환경 곳곳에 찾아내지 못한 숨어 있는 가치가 있다. 가치는 꼭 자로 재는 길이처럼 긴 것이 좋고 짧은 것이 좋지 않다거나 짧은 것이 좋고 긴 것이 좋지 않다거나 하는 상대적 우열 논리가 아니다. 본래평등이라는 말은 획일적인 규격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긴 것은 긴 것대로 좋고 짧은 것은 짧은 것대로 좋은 것이 본래평등이다. 학의 다리는 본래 길고 오리 다리는 본래 짧은 것. 그것이 바로 본래 평등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6년 4월 제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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