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영조 때의 실학자 이덕무(李德懋 : 1741~1793)가 쓴 자서전의 제목이 『간서치전(看書痴傳)』으로 되어 있다. 이는 그가 자신에 대해 직접 쓴 짤막한 기록문인데 무엇보다 제목이 특이하여 호기심을 끌고 있다. 이 말은 책만 보는 바보 얼간이라는 뜻인데 자신을 스스로 비하시켜 붙인 말인 것 같다.
당대의 학자였던 그가 스스로를 책만 보는 얼간이라고 표현한 것은 겸손의 미덕으로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그의 불우한 생애에 대한 자조의 푸념이 담긴 말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서자출신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고 몸이 약하여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고 온갖 고생을 겪으며 성장했던 매우 불우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타고난 총명 덕택으로 6살에 이미 문리(文理)를 얻고 약관에 박제가, 유득공 등과 어울리며 시를 지어 문명을 크게 떨쳤다. 하지만 서자라는 신분 때문에 많은 수모도 겪어야 했고, 벼슬길을 찾는데도 남다른 설움을 견디어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의 학문적인 실력에 비해 그가 누렸던 벼슬은 고위직이 아닌 중하위의 직책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남다른 독서광이었다. 책을 얼마나 열심히 읽었던지 스스로 말하기를 “배고픔과 추위, 설움과 번뇌, 그리고 기침을 잊기 위해 책을 읽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독서로 자기 인생의 한을 풀려했다고나 할까. 불우한 환경의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 책을 읽는데 몰두하였다는 그 정신이 너무나 거룩해 보인다. 그가 얼마나 책읽기를 좋아했는지 다음의 말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나는 책 속에서 소리를 듣는다. 먼 북쪽 변방의 겨울바람 소리, 먼 옛날의 귀뚜라미 소리가 책에서 들린다.”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는 것은 두보의 시 귀뚜라미를 읽고서 느낀 감상을 표현한
것이다.
언젠가 신문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량이 일반층이나 학생층에서 모두 이웃나라들에 비교하여 현격히 떨어진다는 말을 들었다. 젊은 세대들은 컴퓨터 게임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고 학생들은 수험공부에만 시달리고, 일반사람들도 책을 가까이 하지 않아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한 가지를 든다면 옛날의 선비정신이 실종된 부재현상에서 비롯된 일로, 독서로 정신수양을 하려하지 않는 점이 그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생각된다. 옛날의 선비들은 항상 책을 가까이 하고 살았다. 자신의 인격을 닦는 필수적 수신이 바로 책을 찾는데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선비정신이란 꼭 문벌이 좋은 귀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글을 좋아하며 도덕적 품위를 지키려는 이들이 선비들이었다. 이들은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도덕적 소신을 분명하게 지키면서 문(文)을 숭상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글 한자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끝까지 이치를 궁구하려 하였다. 이들은 독서삼도(讀書三到)로써 삶의 영양을 섭취하며 살았다. 독서삼도란 책을 눈으로 잘 보고 입으로 잘 읽고 마음으로 잘 이해하여 음미하는 것을 말한다.
책 속에 길이 있다는 말은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또한 책 속에는 스스로를 달래며 위안시켜주는 안심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모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물질만능의 배금주의가 된 세상에서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유흥과 환락 쪽으로 관심을 기울이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감에 열등의식에 빠져 마음의 수양을 뒷전으로 보내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경향이 두드러진 사회가 되었다. 국민의 지적 자산이 감소하는 현상이며, 동시에 사회의 도덕적 자산이 감소하는 현상이다. ‘빵만으로 살수 없다’고 외친 사람이 있었듯이 육체적 탐닉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
불교로 말하면 가장 많은 경전을 가지고 있는 종교이다. 그러나 불교의 독서량이 다른 종교보다 많다고 할 수가 없다. 팔만대장경을 두고도 읽는 불자가 없다면 독서의 결핍으로 불교가 쇠망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전읽기 등 새로운 독서운동이 불교계 안에서도 일어나야 하고 사회적 운동으로도 책읽기가 권장되어야 하겠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남의 책을 읽는데 시간을 보내라. 남이 고생한 것에 의해 쉽게 자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우리는 한 편의 시를 읽고 이를 음미해 볼 수 있는 생활의 정서적 여유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으면 어떤 의미에서 나의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될 것이다.
樂山 지안 큰스님 글. 월간반야 2007년 7월 제8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