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念 통한 관음보살 위신력 체험 강조
법화경의 25품 해당…후대 단독 경전으로 완성
‘사흘 닦은 마음은 천년(千年)의 보배와 같고, 백년(百年)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 아침의 이슬과 같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닦아야 할 모든 선행 공덕은 남들이 닦아주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가 닦아야 하고, 또한 내 스스로가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은 올바른 믿음 속에 크나큰 공덕이 들어있기 때문이지요.
사실 믿음이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지 한가지 실례(實例)를 들어보면 하체를 못쓰는 어머니가 보모를 두고서 아기를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보모가 잠시 한 눈을 파는 사이에 아기가 엉금엉금 기어서 베란다 난간에 매달려 떨어지기 일보 직전에 있는 것을 불구자인 아기의 어머니가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휠체어에 앉아있던 아기의 어머니가 벌떡 일어나 아기를 들어다가 방바닥에 내려놓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고 합니다. 원래 다리를 못쓰는 어머니이니까 더 이상 서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아기를 구하겠다는 일념(一念)은 그리도 무서운 힘을 발휘하게 하였던 겁니다. 이와 같이 일념이라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고 설하는 경전이 바로 《관음경》입니다.
이 경전의 갖춘 경명(經名)은 《묘법연화경관세음보살보문품(妙法蓮華經觀世音菩薩普門品)》인데 실은 {법화경}의 제25품에 해당하는 경전으로서 일찍부터 단독경전으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모든 대·소승경전의 첫머리가 육성취(六成就)의 하나인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되고 있는데 비하여 《관음경》에서는 처음부터 무진의(無盡意)보살이 부처님께 관세음보살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여쭙는 대목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점에서 보더라도 이 경전이 완본(完本)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질문을 받으신 부처님께서는 관세음보살이라 불리게 된 이유를 자세하게 설해주시는데 이때의 문답이 바로 이 경전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경명의 ‘관세음보살’은 범어로 아바로키테스바라(Avalokitesvara)를 번역한 것인데, 여기에는 자리적인 수행과 이타적인 전법의 두 가지 뜻이 담겨있지요.
그래서 현장 스님은 자리(自利) 수행에다 비중을 두고서 ‘관자재(觀自在)보살’이라 번역을 하였고, 구마라집 스님은 이타행(利他行) 즉 중생교화의 입장에 비중을 두었기 때문에 ‘관세음보살’이라는 각기 다른 명칭으로 번역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보문’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넓은 문을 뜻하는데 더구나 ‘보문시현(普門示現)’이므로 어디에서나 한량없이 나투시는 관세음보살의 색신(色身)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가진 《관음경》의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드리면, 한량없이 많은 백천만억 중생들이 어떠한 어려움을 당하였을 때 일심으로 관세음보살을 염송(念誦)하면 관세음보살은 즉시에 그들로 하여금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장자, 바라문, 국왕, 비구, 비구니, 동남, 동녀 등 중생들의 고통에 상응하는 몸을 나투어서 제도한다고 합니다.
사실 우리들이 생활하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재난을 만나기도 하고 경제난에 허덕일 때도 있으며 때로는 한없는 욕망 때문에 갈등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이렇게 혼란한 사바세계에서 평안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우리들에게 관세음보살은 항상 의지처가 되고 우리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일념으로 관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천 개의 손,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보살이 곧 달려와서 구원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렇게 ‘현세이익’을 설하면서도 끝에 가서는 무소득(無所得)의 대승불교사상에 젖어들게끔 인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현세이익이라는 소박한 희망으로부터 무소득의 대승경지까지 친절하게 이끌어주심으로서 불교가 지향하는 이상의 목적지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경전의 내용이 설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하여 관음보살이야말로 실은 우리들의 잡다한 번뇌 속에 묻혀있는 존엄한 인간성, 즉 ‘또 하나의 자기’라는 것을 발견하도록 해주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독송하는 ‘내 자신이 바로 관음보살’이라고 자각하게끔 알려주는 것이 《관음경》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반야심경》이 《대반야경》의 진수이듯이 《관음경》 또한 《법화경》의 정수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 계환스님의 경전산책에서 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