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와 지방화

요즈음처럼 매사의 판단이 혼란스러울 때가 일찌기 있었던가. 온전히 지구가 하나의 마을이 된 것처럼 지구촌이라 부르고 2백개나 되는 나라와 나라사이의 국경의 의미도 퇴색하는가 하면, 개인과 기업의 활동범위가 세계로 확대되어 국제화·세계화는 이미 20세기 후반에 전 지구촌을 지배한 핵심 개념의 하나가 되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지방화니 지방분권이니 지역화·블록화 하면서 상대적 개념인 지역주의를 외친다.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인류는 바야흐로 물질문명과 과학기술문명의 꽃을 활짝 피워 교통과 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글로벌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시공의 제약을 무시해 버릴 정도에 이르렀다. 여기에다 이데올로기를 앞세운 미국과 소련 두 축간의 냉전이 종식되고 사회주의의 몰락과 더불어 시장 경제가 전 세계로 확산되어 상품과 자본의 이동이 급속히 이루어지니 그 변화의 속도가 가히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 되었다.

또한 국제적 자본 이동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경제교류는 더욱 용이해 졌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이라 할 수 있는 전자회사도 기실 우리 자본보다 외국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걸 이제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IMF 구제금융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의 알짜배기 기업은 외국 자본가의 손에 속속 넘어가고, 신토불이 토종기업이라 믿었던 우리의 회사는 밀려들어오는 외국자본을 막지 못하고 서서히 잠식당하고 있다.

전직 모 대통령은 국제화·세계화라고 하니 국민들이 영어를 잘 구사하는 것이 국제화·세계화인 줄 알고 초등학교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도록 한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남기기도 했다. 그러나 이 세계화는 경제적 효율성의 자연적 귀결이자 필연적 진화라는 긍정적 답을 줄 수 있는가 하면,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 지구적 헤게모니 장악이며, 나아가 자유시장주의와 자본주의가 20세기말의 그 당당했던 여세를 몰아 패권을 더욱 강화한다는 비판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이 세계화의 연장선에서 최근의 WTO라는 세계무역의 신질서를 만들기 위한 기구가 자리잡으면서 지역화·블록화·불평등·환경문제·남북문제·국지전·민족문제 등으로 나타나 세계화의 도전에 대한 응답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계화의 확산에 기여하는 것인지 그 파장은 자못 심각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아직 ‘FTA’ 하나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으니 걱정이다. 그저 세계화의 거센 바람에 사라져갈 것만 같던 민족개념이 이즈음 다시 부상하니 민족정체성 문제나 문화적 결집 등이 그 한 예로 나타난다.

어쩌면 세계화의 물결은 노동이나 경제ㆍ문화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범 지구적 경쟁력이 격화되어 파괴적·살인적 경쟁으로 이어져 생태계가 교란되고 전쟁으로 이어져 급기야는 전 세계적인 인류의 위기로 이어질까 두렵다. 하지만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먹고, 입고, 사는 것에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면 세계화면 어떻고 지방화면 어떨까.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11월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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