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자기 수중에 있는 것을 쓰지 않고 있는 것을 두고 “손에 붙은 밥을 왜 먹지 않는가”라고 묻는 속담이 전해진다. 우리나라 속담인데 이는 “지금 무얼 하기에 손가락에 밥풀을 붙인 채 그냥 있느냐”는 질타성의 말로, “정신 차리라”는 뜻도 된다. 인간의 의식구조는 참으로 묘하다. 흔히 우리가 엉뚱한 생각을 왜 하느냐고 하듯이 정말 자기도 모르게 자신이 엉뚱한 생각으로 엉뚱한 일을 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쓸데없는 일에 정신 팔려 쓸데 있는 일을 놓치는 수도 허다하다.
어느 날 부처님이 설법을 마치고 숲 속의 길을 지나고 있었다. 그 때 청년 몇 명이 부처님 앞에 나타났다. 급히 서둘러 뛰어오던 청년 한 명이 부처님께 물었다.
“실례합니다. 오시던 길에 혹시 여자 한 명이 가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보지 못했네. 그런데 여자를 왜 찾는가?”
“예, 우리가 야유회를 오면서 흥을 돋우기 위해 한 기생을 돈을 주고 데려왔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놀이에 지쳐 피곤하여 잠시 쉬면서 그만 낮잠에 떨어졌는데, 그사이 그 기생이 우리들의 소지품을 몽땅 훔쳐 달아나 버렸습니다.”
청년들의 설명이 끝나자 부처님은 조용히 타이르는 듯한 말씨로 청년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여자를 찾아 잃어버린 물건을 되찾기 전에 먼저 찾아야 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그대들이 유흥과 환락에 빠진 탓에 실종되어버린 그대들의 올바르고 참된 정신이다. 그대들은 잃어버린 정신부터 찾아야 하겠네.”
현대 사람들을 두고 자아를 잃어버리고 산다고 비평하는 말들도 오래 전에 나왔다. 롤로메이의 『잃어버린 자아를 찾아서 (Man’s search for himself)』라는 책이 나온지도 이미 오래 되었다. 내가 나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소지품을 잃고는 아까워 찾으려 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잃어버리고도 찾지 않는다는 매우 아이러니컬한 이야기를 통해, 자기 점검을 하고 자기 회복에 힘쓰는 것이 인생의 책무라고 할 수 있다. 『맹자』의 「구방심장(求放心章)」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자기 집에 기르는 개나 닭과 같은 가축이 집을 나가 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으면, 집밖에 나가 그 가축을 찾으면서도 정작 정신 팔려 엉뚱한 곳에 보내 놓은 자기 마음은 불러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불교의 성품론(性品論)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이미 자기 자성 속에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내 행복이 이미 내 안에 갖추어져 있으며, 나는 나로서 충분하다는 것이다. 나는 나 이상일 수도 없고 나 이하일 수도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에 나 홀로 가장 높다고 하였다. 자신은 언제나 절대적 자리에 자유롭게 처해 있다는 뜻이다.
언필칭 우리는 세상 살기 힘들다는 탄식들을 종종 한다. 사회제도 속에서 갖춰져야 할 조건이 미비하여 우리 생활을 위협하고 있다고 불안해한다. 그러나 이러한 불안감이 기실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사람은 불만이 많을수록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는다. 사실 우리 현실에는 그릇된 일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말해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현안에 대해 부정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것은 다분히 객관 경계를 평가하는 우리들의 주관기준에 기인한 판단일 뿐이다. 마음이 지혜롭지 못하고 어리석을 때 그 판단도 얼마든지 틀릴 수 있다. 문제는 내 마음을 비우고 전체를 정중(正中)하게 볼 수 있는 내 안목이 열려야 하는 것이다. 어느 한 쪽에 치우친 편견으로는 옳은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이치에 맞는 경우나 이치에 틀린 경우가 결국은 마음작용의 차이일 뿐으로,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 쓰는 용심에 대해서 평가하는 것으로 끝난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이 있다. 선도 있고 악도 있으며 정의도 있고 불의도 있다. 사랑도 있고 증오도 있고 진실도 있고 거짓도 있다. 모든 것을 내포하고 있으면서도 미혹으로 인한 번뇌와 망상 때문에 마음은 항상 그릇된 쪽으로 잘 기울어진다고 한다. 그리하여 스스로의 장애를 만드는 업장에 묶여버리는 것이다. 바로 이 업장을 푸는 일이 나를 바로 하는 일이다. 또한 내가 나를 찾는 일이다. 내 속에 있는 참 나는 제쳐놓고 망령같은 미혹의 거짓자기에 속고 살아서는 안 될 일이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548년 6월 제4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