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도 긴 장마에다 국지성 폭우와 폭염으로 올 여름은 세인들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 여름의 시작을 북위 60도 위 아래로 오르내리면서 러시아와 북유럽에서 10여일을 보냈다. 예비지식을 갖기 위해 미리 70여 쪽의 자료까지 만들어서 일행들에게 나누어주고, 읽어보기도 했건만 이제껏 머리에 남아있는 거라곤 내 알량한 지식에 대한 부끄러움과 마지막 자존심이었던 나름의 이성적 판단에 회의(懷疑)를 느낄 뿐이다.
처음으로 나를 당황하게 한 사건은 바이킹(Viking)족이었다. ‘바이킹’의 의미는 ‘해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라고 하였다. 지금껏 내 상식으로는 ‘스스로 노력하여 생업을 유지하지 않고 이따금씩 바다에 나가서 지나가는 배를 납치하여 재물을 빼앗는 해적’ 정도로 알고 있었기에, 덴마크의 달가스나 그룬트비를 더 존경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바이킹’은 ‘척박한 땅, 부족한 농지에다 기후마저 고르지 못한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삶의 무대를 밖으로 향하고 보다 적극적인 삶의 자세를 취한 점을 높이 평가’하는가 하면, 이들이 ‘획득한 재물을 종족의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하여 ‘종족의 화합을 꾀하고’, 아주 ‘근면하였다’고 한다. 어쩌면 우리와는 정반대의 시각이었다.
흔히 우리는 스칸디나비아 3국을 비롯한 북유럽의 나라들이 ‘사회보장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어 국민들이 일하기를 꺼린다든지, 무료하여 자살률이 높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비친 모습에서나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확인된 것은 우리의 선입관이나 알고 있는 바와는 거리가 멀었다. 건강한 국민이라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놀고먹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젊은 부부는 거의가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처럼 건강보험, 생명보험, 교육보험, 고용보험, 연금보험 따위의 보험제도는 없었다. 열심히 일하고 세금 잘 내고 하면 다른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되니까 말이다. 물론 병원에 가도 돈을 주고받고 계산하는 수납창구는 없단다. 그러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자기의 생일에는 집에 국기(國旗)를 게양하는가 하면, 이웃사람이 죽었다고 마을의 친한 집에서는 조기弔旗를 다는 곳도 있었다. 국기는 나라에 경사스런 날이나 기념일에만 다는 우리로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북유럽의 여름은 ‘백야(白夜)’를 빼면 이야기할 게 없다. 북위 62도 정도의 지역에서 ‘하지(夏至)’를 맞았다. 이곳에서는 ‘성탄절’ 축제 다음으로 ‘하지 축제’가 대단하다. ‘하지’가 들어있는 주말에 3일간 열린다고 했다. 북극에 가까워지면 낮의 길이가 대략 22시간 쯤 된다고 하니 밤이 없다는 말이 옳겠다. 그 반대가 ‘흑야(黑夜)’라 하여 겨울 3달은 낮이 거의 없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고 했다.
스칸디나비아 산맥의 고지에서 하지를 보내고 스톡홀름을 거쳐 헬싱키로 가는 여정은 5성급의 호화여객선 ‘SILJA LINE(실자 또는 실야 라인)’을 이용했다. 발트해Baltic sea의 은빛바다를 백야현상과 함께 하룻밤을 보낼 생각으로 설레는 마음으로 배에 올랐다.
길이 200m, 높이 13층, 2,800명을 수용한다고 하니 그 위용에 우선 놀랐다. 실자라인 그 자체보다 이번 여행을 준비하면서부터 우리 내외는 백야와 함께 꼭 ‘일출(日出)’과 ‘일몰(日沒)’을 보고오리라 계획한 바 있기에 ‘실자라인’ 선상(船上)이 가장 적지라고 생각했다. 계획대로 밤10시 쯤 14층격인 상갑판에 올라가 ‘일몰’을 기다렸다가 10시 반 쯤 일몰을 확인하고 사진을 찍고는 여러 곳을 두루 구경하고 새벽 1시경 잠자리에 들면서 2시쯤은 일어나야 일출을 볼 수 있다고 알람에게 부탁했더니 2시 정각에 깨워주었다.
서둘러 상갑판에 올라가서 어젯밤 일몰과 반대방향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웬걸. 해뜨기 전의 여명도 아침노을도 보이질 않았다. 다시 또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배의 길이가 2백 미터니 얼마나 뛰었을까. 한 바퀴를 돌아 어젯밤 해가 진 곳으로 오니 그곳에서 붉은 여명의 분위기가 보였다. ‘해는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진다’는 내 머리의 한계를 보았다. 분명히 배는 헬싱키가 있는 동쪽으로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어제 해가 진 곳은 어디란 말인가? 분명히 북쪽이었다. 그럼 이 아침에 해가 뜬 곳은 또 어디란 말인가? 역시 북쪽이었다. 해는 동에서 떠서 서로 지는 게 아니라 북쪽에서 떠서 북쪽으로 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북극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비로소 실감했다. 그믐이 가까운 하현은 뱃머리 위에서 나를 향해 씩 웃고 있었다. 인생이란 살아갈수록 무지와 편견을 더욱 실감하게 되는가 보다.
김형춘 창원문성대학 교수, 문학박사, 월간 반야 2011년 8월 12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