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해처럼 명절이 지나면 다들 반가운 얼굴로 “명절 잘 지내셨습니까”라는 인사 대신 “태풍 피해 없었습니까”로 바뀐 올해의 추석이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이럴 수가’할 정도로 철저하게 당했다는 생각이다.
내 무딘 기억이지만 태풍하면 ‘쎌마’니 ‘루사’니 해도 1959년 추석에 불어닥친 ‘사라’만큼 놀란 적은 없었다. 밤새 내린 폭풍우 때문인지 추석을 맞는 설레임 탓인지는 몰라도 다른 날 보다 일찍 방문을 열고 나오니, 마을 앞의 둑이 무너져서 앞들의 벼는 하나도 보이지 않고 사립문을 통해 마당으로 버얼건 황토물이 꾸역꾸역 밀려들어오는 게 아닌가. 물은 계속 불어나서 축담까지 올라오고 우리집보다 낮은 앞집에서는 담장을 무너뜨리고 황급히 우리집으로 식구들을 대피시키는 등 난생 처음 물난리를 겪었으니 사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태풍’ 하면 ‘사라호’라는 기억 밖에 없다. (그때는 ○호 태풍 ‘사라’라고 하지 않고 그냥 ‘사라호’라 하였음). 아마 ‘사라’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훗날 태풍 이야기가 나오면 태풍 ‘매미’를 기억하겠지만.
생활고와 경기침체로 사회적 살인이라는 집단자살ㆍ동반자살이 유행처럼 번지는 등 뒤숭숭한 가운데 맞은 추석은 태풍 매미덕분에 그야말로 한반도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쑥대밭을 만들어 놓았다. 무너져 내린 산, 뻘밭으로 변한 논밭, 쓰레기장이 된 하천과 도로, 주저앉은 집, 도심의 길가에 나둥그러진 원목, 도심의 도로에 드러누운 배, 어시장 근처의 고기 썪는 냄새, 넘어진 철탑, 과수원의 떨어진 낙과를 보며 통곡하는 아낙네, 진흙투성이의 논에서 쓰러진 벼포기를 등지고 먼 산을 바라보는 농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절규 등 한마디로 참담함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피해는 기실 예고된 것이라고 보아도 틀림이 없다. 태풍이 오지 않은 여름이 있었던가. 집중호우와 산사태가 없었던 해가 있었던가. 제방이 붕괴되고 도로가 유실되는 피해가 올해만 있었던가. ‘매미’가 빠른 속도로 날아온다는 기상특보는 농담이었던가. 뻔히 당할 줄 알면서도 요행만을 바라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수십년 반복되어온 재해를 왜 우리는 그냥 보고 당해야만 하는가.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는 것일까. 국민들의 안전불감증과 미봉적이고 임시방편적인 대비책으로 또 우리는 불안한 내년 여름을 맞을 것인가. 이제 우리 국민은 눈물겨운 피해상황을 더 이상 보고싶어 하지 않는다. 확실한 재난 극복을 위한 구체적이고 전문적인 재난방지 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하는 것을 보고싶을 따름이다. 정치논리에 희생되고 휘둘리는 재난방지대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김형춘 글 / 월간반야 2003년 10월 (제35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