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고도로 발달된 현대 문명 속에서 사람이 수용하는 의식주의 생활이 날로 고급화 되어간다. 시골도 이제 도시화 되어가면서 하늘을 찌르는 고층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다. 더구나 발달된 상업주의의 광고들이 범람하면서 허장성세의 호화로운 겉모습들이 사람의 눈을 어지럽히고 있다. 곳곳에 다운타운이 이루어져 상권이 형성되면서 오늘은 무엇을 살까 살거리를 챙기는 쇼핑문화가 구매충동을 자극하여 정말 소비가 미덕인양 착각하고 사는 사람들을 늘어나게 하고 있다.
이른바 생활수준이 높아져 수준유지를 하기 위하여 모두가 과소비를 하면서 살아가는 판국이 된 것이다. 따라서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면서 심지어 아기를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에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젊은 부모들의 푸념 섞인 넋두리가 나오기도 한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 정말 사는 게 고생이라는 불교의 설명이 실감나게 들린다.
돈이 신이 되었다는 뜻에서 가드머니(God money)라는 신조어가 등장한지 이미 오래 되었지만 앞으로 점점 고단위 비용이 드는 생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생활공간이 물질적 고급으로 치장되면서 그 속에 향락을 누리고자 하는 심리가 더욱 깊어져 갈 것이다.
이른바 과학문명의 덕택에 의해 이루어지는 현대화라는 것은 물질의 수용을 고비용으로 업그레이드 시켜 가는 것이다. 옛날 보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집에 사는 것이 생활수준이 높아진 것이 된다. 모든 것이 물질적 고급화로 치달아 간다. 그런데 이것이 물질로서의 양질이 된다 하더라도 생활의 양질, 다시 말해 삶의 양질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이 값비싼 좋은 옷을 입고 다닌다 해서 인격이 훌륭한 좋은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외형의 치장에 앞선 내면의 성숙이 있어야 한다. 사람에 있어서 몸과 마음은 안팎의 조화다. 정신이 맑고 마음이 건실한 사람은 항상 내면의 덕을 키우는데 자기 모범을 가지고 산다. 그러나 겉치레에만 치중하고 사는 사람은 언제나 신념에 의한 자기 모범의 틀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남을 의식하면서 서툰 모방만 과시하려는 경향이 많다. 몸에 신경 쓰면서 건강을 돌보고 몸매를 가꾸는 현대인들은 마음 쓰는 아름다움이 부족하다. 자칫 몸을 위한 허영만 챙기고 마음에 고이 간직해야할 미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부족하다. 유행에 따른 감각은 세련되어도 세상을 바라보는 올바른 지견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
이 세상은 내가 아는 것만큼 내 영역이 되는 것이고 내 소견의 양만큼 보여 지는 것이다. 내가 모르는 것은 내영역이 될 수 없고 내 소견이 막혀버리면 의미 있는 존재가 내게 나타나 주지 않는다.
어느 선사가 불자들이 찾아와 인사를 할 때마다 어디서 왔느냐고 상투적인 질문을 하고는 “그대를 여기에 오게 한 것이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인사한 사람이 어리둥절해할 때 “차는 기사가 운전을 하는데 그대의 몸을 운전하는 기사는 어디 있나?” 하고 또 물었다. 자기의 정체에 대한 자각심을 일깨우게 하는 법문이다. 선사들은 으레 “내가 누구인가?”하는 공부를 하라고 이른다. 사실 내 자신의 삶의 가치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자기 정체가 알아질 때 바로 나온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허영과 향락의 경계에 맹목적으로 휩쓸러 가지 말아야 한다. 외화내빈의 자기 초상을 만들어 가는 것도 바람직스럽지 못하다. 겉으로 잘 보여 지지 않아도 속에 찬 알맹이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사람을 보고 집을 보는 것이지 집을 보고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다’라는 선어록에 나오는 말이 있다. 아무리 호화로운 큰 저택이 있어도 건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집에 사는 주인이 누구이냐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집이란 사람이 사는 시설물에 불과하다. 집은 팔고 살수가 있지만 사람은 팔고 살 수가 없다. 가치전도로 인해 사람보다 집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인생을 배반하고 사람을 배신하는 결과가 되고 말 것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것은 사람밖에 없다. 사람이 제일 좋은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가치와 의미는 사람 쪽으로 가는 것이다. 때문에 사람은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 하고 동시에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사람에게 있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일이다. 불교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람 밖에 부처가 따로 없다. 사람이 바로 부처다.
지안스님 글. 월간반야 2005년 12월 제6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