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신(福神)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

마산 포교당에 살고 있을 때인 1993년 8월 초순 나는 호진 스님과 같이 일본 대마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마침 마산 해운동에서 대마도 이즈하라까지 가는 대마페리호가 처음 개통 되던 날 우리는 짧은 2박 3일의 일정으로 대마도를 가게 되었던 것이다. 5시간이 걸려 이즈하라에 도착했는데 개통을 기념하여 승객을 환영하는 간단한 행사가 부두에 준비되어 있었고 일본 TV방송에서 나온 사진기자들이 입항한 배에서 내리는 승객들을 찍다가 우리의 승복차림이 특이해서인지 우리에게도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었다.

우리는 우선 민박하는 집을 찾아가 이틀 밤을 묵기로 해놓고 몇 곳의 명소들을 찾아 관광을 하였다. 아름다운 수목이 우거져 있고 많은 석등들이 줄지어 있는 만송원, 대마도 원경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일본열도로 들어가는 항공기들이 앉아 대기하고 있는 공항, 원군과 조선군이 연합하여 대마도를 정벌했던 바닷가의 전쟁유적지 등을 먼저 둘러보았다.

이튿날 우리는 아주 중요시하고 찾아보기로 했던 수선사修善寺를 방문하였다. 이곳에 한말의 애국지사 최익현 선생의 유적비가 있어 이를 참관하기 위해서였다. 최익현崔益鉉, 1833~1906 선생은 한말의 대학자로 이항로의 문하에서 성리학을 수학한 후 철종 때 명경과에 급제 출사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한 인물이었다. 특히 그는 강직한 성품과 우국애민의 충정으로 임금께 상소를 자주 올렸다.

경복궁 재건을 위한 대원군의 비정을 비판 시정을 건의한 상소, 신미양요 후 대원군이 서원철페를 단행하자 그 시정을 건의한 상소, 그리고 병자수호조약을 결사반대한 상소,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의분을 이기지 못하여 올린 청토오적소請討五敵疏 등을 올렸다. 청토오적소는 망국조약에 참여한 소위 을사오적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등을 처단할 것을 주장한 상소였다. 이러한 상소들을 올린 탓으로 귀양살이도 많이 하였다. 제주도와 흑산도에 유배생활을 하기도 하였다. 만년에는 항일 척사운동을 주도하다가 74세 때 의병을 일으켜 진충보국盡忠報國하고자 하였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하고 대마도에서 옥사를 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그의 비석 앞에서 숭고한 애국충정에 경의를 표하면서 잠시 묵념을 올리며 기도를 하였다.

이 수선사를 찾기 위하여 길을 찾던 중 우리는 가게에 들려 기념품을 하나씩 사고 가게 주인에게 길을 물었다. 수선사를 가려면 어떻게 가느냐고 물었더니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주인이 가게를 비워 두고 밖으로 나와 100m 가량을 길을 걸어 우리를 안내한 후 손가락으로 수선사 있는 쪽을 가리키며 찾아가기 쉽도록 설명을 해 주는 것이었다. 우리는 이 여주인의 친절에 감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게를 비워 둔 채 100m의 거리를 나와 자상하게 안내해 주는 그녀의 친절이 너무도 고마웠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아무도 없는 가게를 비워 두고 나와 친절을 베풀어 주느냐 하였더니 그녀의 대답이 또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대답은 “오늘 한국에서 온 두 스님을 내가 좀 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드리면 ‘후꾸노가미’가 나에게 복을 주지 않을까 생각되어 가르쳐 드리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후꾸노가미는 복을 주는 신인 복신福神의 일본말이다. 이 말을 들은 나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길을 가르쳐 준 호의가 복신을 의식하여 복을 받기 위한 행동이었다면 어떤 대가를 바라는 것으로 순수한 마음이 아니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과 한 편 복 받기를 의식하면서 선행을 한다는 것은 결국 불교에서 말하는 인과의 이치를 믿는다는 뜻으로 해석이 되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다소 어안이 벙벙해지는 묘한 기분이 되었지만 조건 없는 친절이 아닌 복신을 의식하는 마음에서 친절을 베풀었다 하드라도 그 여주인의 의식 속에 특유한 생활철학이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보통 사람들에게 상相이 없는 마음을 바라기는 어려울 것이고, 복신을 의식하며 착한 행동을 하겠다는 그 마음이 가상스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람이 하는 행동에 스스로 좋은 의미를 부여하여 선업을 지을 수 있는 방편을 삼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윤리도덕을 제고하는 개인의 수행이자 사회적 이익을 창출하는 고도의 정신적 가치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또한 남에게 친절한 것, 이것이 바로 좋은 사회를 만드는 가장 기초적이고 지름길이 되는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아직도 내 머리 속에는 이즈하라 가게 여주인의 그 때의 그 말이 남아 있다. “ 후꾸노가미가 복을 줄지 모른다.” 그녀는 분명 복신을 의식하고 사는 사람이었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09년 8월 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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