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찾는 마음

민속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는 귀성 인파가 전국의 고속도로를 꽉 메우고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잠시 고향에 대한 추억을 생각해 본다. 우리 같은 출가한 사람에게는 고향을 찾는 일이 별로 없지만 그래도 고향은 가슴 속에 언제나 남아 있다. 사람에게 고향이 있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할까? 태어나서 처음 이 세상의 빛을 본 곳이 고향이다. 부모의 품에 안겨 돌을 지내고 한 살 두 살 나이를 올리면서 어린 시절을 살았던 고향. 지구가 넓고 도처에 사람 사는 곳이 많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만한 것이 어디에 있던가. 인간은 누구나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

언제, 어디서라는 것은 중생세계에 있어 인연이 맺히는 자리이며, 고향이라는 것은 내가 이 세상과 인연을 맺은 최초의 자리이다. 말하자면 내 인연이 이 세상에서 구체적으로 시작된 곳이 고향이 갖는 의미이다. 시간이 갖는 의미의 시작은 결과의 성취를 이룬 근본인연이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게 된 것은 고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존재의 지리적 근본배경이 되어준 고향의 은혜는 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언제나 내 정서의 보금자리인 고향이 있기 때문에 외로움도 달랠 수 있고 슬픔도 달랠 수가 있다. 고향이 있다는 생각만 하여도 스스로 위안이 되고도 남는다.

불교에서는 사람이 태어난 지리적 장소인 고향이라는 말을 다른 의미로 쓰는 예가 있다. ‘능엄경(楞嚴經)’에는 중생이 나고 죽는 생사의 윤회를 고향을 떠난 ‘객지 생활’로 비유한다. 즉, 사람의 일생은 여행자가 여로 중에 하루를 묵는 숙박과 같다는 것이다. 내 집을 떠나 먼 곳으로 여행을 나간 사람이 이곳저곳을 다니다가 해가 져 밤이 되었을 때 여관 같은 곳에 들어가 하룻밤을 묵는 시간이 한 생애의 시간이라는 것이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내일은 저기서 묵고 하는 것이 금생과 내생의 생애라는 말이다. 세세생생을 계속하는 것은 객지 생활을 전전한다는 뜻이 된다.

‘가향로(家鄕路)’라는 말이 있다. 고향에 돌아가는 길이란 뜻이다. 명절에 고향을 찾아가는 길처럼 윤회를 벗어나 해탈, 열반의 세계를 찾아가는 길이 고향길이다. 가슴 속에 일어나는 영원한 향수는 이 고향길을 찾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일반적으로 세 개의 고향을 말하기도 한다. 하나는 내가 태어난 곳으로 명절 때 찾아가는 어릴 때 살던 정든 곳이다. 언덕이 그립고, 산고개가 그립고, ‘남쪽바다 파란 물’이 그리운 내가 태어난 아름다운 곳, 그렇게 고향은 누구에게나 아름다운 곳이다.

이러한 지리적 공간 다음에는 천륜의 고향을 이야기 하는데, 나를 낳아준 부모를 고향이라 한다. 부모가 계시는 곳은 어디든지 고향이 되어버린다. 고향은 부모의 품과 같은 것이며, 부모의 품은 언제나 효의 본고장이 되어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고향이 있다. 세 번째 고향인 이 고향은 문학적으로 말하면 영혼의 고향이다. 이 세상 인연이 맺어지기 전의 시공을 초월해 있는 생명실상의 고향이다. 곧 내 마음의 성품, 불성佛性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 마음의 정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고향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깨달음의 자리다. 영원을 잉태하고 무한을 잉태해 있는 진여眞如의 그 자리가 우리들 영혼의 고향이다.

고향 생각은 이 세 가지 고향의 개념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사람은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고 살아야 한다. 이 고향생각이 나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하는 생각의 샘물이다. 생각의 원천이 고향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한 번쯤 깨달아 볼 수 있어야 한다.

고향 찾아 가는 명절의 길처럼 내 인생의 길도 고향 길을 향하는 여로이다. 언제 쯤 영혼의 고향에 도착할 것인가?

君自故鄕來(군자고향래) 그대가 고향에서 왔다니

應知故鄕事(응지고향사) 고향의 일 잘 알고 있겠군요.

來日綺窓前(내일기창전) 떠나오던 날 우리 집 비단 커턴 쳐진 창 앞에

寒梅着花未(한매착화미) 추위 겪던 매화가 피었던가요.

시의 부처(詩佛)라고 불리던 왕유(王維)의 시이다. 이 시에서의 고향은 무한한 뜻을 상징하고 있다. 고향 소식을 묻는 말이 ‘매화가 피었더냐?’는 말이다. 매화는 고향 소식을 대변하는 말이 되었다. 고향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매화꽃이 필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지안 큰스님 글. 월간 반야 2010년 10월 1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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