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승불교 (1)대승불교가 일어난 배경

석가모니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후 100년쯤 지나 불교 교단이 분열되기 시작하였다. 기원전 4세기 무렵이었다. 계율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보수파와 진보파의 두 파가 나누어지기 시작한 것이 교단분열의 시초였다.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기 전 아란존자가 부처님께 질문을 하였다. 부처님의 열반에 드신 후에 누구를 의지하여 수행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부처님은 이때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 수행하라고 하였다. 이른바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의 가르침이었다. 아울러 계율을 지켜 이 계율을 스승으로 삼아 수행하라 하였다. 이는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남긴 최후의 유언이라 할 수 있는 말씀이었다.

부처님이 열반에 든 후 제자들은 부처님이 가르친 교법의 말씀과 계율에 관한 것을 정리하여 이것으로 수행의 지침을 삼고자 하였다. 그러다 시간이 점점 지남에 따라 부처님의 교법과 계율을 해석하고 실천하는데 입장을 달리하는 견해가 나오게 되었다. 그것은 불교가 여러 지방으로 퍼져 전파 범위가 넓어지고 시대 사정이 조금씩 변함에 따라 기후나 풍습 그리고 생활습관의 차이가 생기고 이러한 영향이 출가 수행자들에게도 미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교법과 율에 대한 이설(異說)이 생겨나 교단이 하나로 통일되지 못하고 분파가 생기게 된 것이다. 이를테면 출가 수행자인 비구들은 신도들로부터 금이나 은 따위의 보시를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일부 비구들은 물질적 가치가 커져 가는 시대변화에 부응하여 그것을 받아도 무방한 것으로 하자고 주장하면서 이 계율의 완화를 주장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경향을 띤 상좌부(上座部:Theravada)와 율 조항을 융통시켜 새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을 띤 대중부(大衆部:Mahasamghika)로 나누어지게 된 것이다. 이를 근본 분열이라 하였다.

그후 다시 교법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또는 유력한 스승의 지도에 따른 수행가풍의 차이와 지리적 거점에 따라 근본 분열한 두 파가 다시 12파와 8파로 나누어져 도합 20부파가 생기게 되었다. 이 시기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부르게 되었고 분열 이전의 불교를 근본불교, 원시불교 또는 초기불교라 부르게 되었다.

부파불교 시대에 접어들면서 불교의 교리전개에 대한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여러 가지 이론들이 성립하였다. 이때 부처님 가르침 전반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하고 논의하여 아비다르마(Abhidharma:阿毘達磨)라는 논서(論書)가 나와 불교의 교법을 방대하게 종합 정리하게 되었는데 이 시기의 불교를 논서의 이름을 따서 아비달마불교라 하기고 한다. 아비달마란 ‘교법에 대하여’ 라는 뜻으로 대법(對法)이라 번역된다. 부파불교라는 말이 교단의 분열된 형태를 나타내는 말인 반면 아비달마는 그들이 주장하는 교법상의 이론을 사상적으로 종합해 놓은 형태라 할 수 있다.

초기불교의 부처님 교설이 주로 무상(無常)하다, 괴로움(苦)이다, 무아(無我)이다 라는 말로 요약되고 인연으로 이루어진 모든 존재를 5온(五蘊), 12처(十二處), 18계(十八界)로 설명하였지만 아비달마불교에서는 이를 더욱 세부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 설명하여 다분히 사변적인데 치우친 이론이 많이 등장하였다. 물론 이 아비달마는 교법을 학문적으로 철학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는 되었지만 번쇄한 이론이 오히려 수행의 어려움을 낳고 또 부파간의 불필요한 논쟁을 초래하기도 하였다. 특히 난해한 교리와 엄격한 계율을 요구하는 출가 중심의 수행자들 외에 부처님에 대한 소박한 믿음을 갖고 있던 재가자들은 부처님에 대한 정의적(情意的)인 마음의 교류를 얻고 싶어 일부 출가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한 스뚜파(stupa)를 찾아 예배 공경하는 풍습이 생겼다. 다시 말하면 사변적인 교리에 입각하여 불교를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불탑에 대한 신앙심을 일으켜 부처님 행적이 남아 있는 곳에 탑을 세우고 또 그러한 곳을 순례를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사례들은 불교의 신행을 일반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하는 불교의 종교적 관습을 새로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 무렵 많은 불탑이 건립되고 또 여기에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때로는 귀중한 보물이나 귀금속 등도 바쳐졌다.

이렇게 불탑이 숭배되면서 부처님을 더욱 신성시하여 마침내 중생을 구제하는 이로 받들어 부처님의 격을 한층 더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다. 최고의 수행자로서 이상적인 수행의 모범을 보여준 부처님이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로 모든 사람들에게 이익을 제공해 주는 구세불(救世佛)로 그 이미지 변화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을 통해 새로운 불교운동이 서서히 일어나게 되었다.

지안스님강의. 월간반야 2002년 4월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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