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영식을 부릴수 있습니까?

질문) 우리는 삼차원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 고차원의 세계에서는 사람의 영식을 부릴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얘기는 저 성경의 기도문에 나오는 ‘저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는 말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르침 바랍니다.

大行) 우리는 지금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고 나아가서는 4차원, 5차원…의 세계가 있다고 하지만 내가 나를 발견했을 땐 바로 무심차원이 됩니다. 그러니까 ‘나를 악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가 아니라 그대로 행하면서 악을 범하지 않는 것입니다. 무심차원이니 넣어도 두드러지지 않고 꺼내도 줄지 않는 것 입니다. 기도문 같은 그런 언어가 붙질 않지요. 그냥 둘이 아닌데 수만의 영식이라도 나한테 넣을 수 있고 내가 수만의 영식으로 화할 수도 있는 것이지요. 깨달은 분들이 가르치는 뜻은 무슨 차원이 어떻다, 단계가 어떻다 하는 게 아니라 주장자 하나드니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어떠냐 하는 식입니다. 달마대사가 주장자 끝에 짚신 한짝 꿰고 또 한 짝은 무덤의 관 속에 놓아둔채 걸어가더라 하는 얘기가 있지요? 그건 무의 세계 유의 세계를 둘이 아니게 무심으로 중용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인의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차원으로 얘기하면 4차원, 5차원, 6차원, 7차원 하겠지만 무심도리에서 일체를 둘이 아니게 수용한다면 차원은 뭉뚱그려 한 차원이라해도 됩니다. 아, 삼천대천세계가 한 통속이요 한 마음인데 둘! 한다고 하나가 아니고 넷! 한다고 하나가 아닙니까? 만부처를 불러도 하나요 십만불을 불러도 하나지요. 가령 저 7차원에 이르러서는 모두가 천국이고 모두가 다 보배다, 천당 지옥이 따로 없으니 어디서 찾으랴 한다면 내 말을 알아들으시겠습니까? 내 마음이 구족하면 전부 구족하고 전부 천당이고 전부 보배이며 내 마음 구족하지 못하면 이 세상 구석구석에 온통 시비분별뿐이고 가는 곳마다 원망과 비방과 이해다툼의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의 마음도리를 무조건 믿고 따르며 열심히 닦는게 중요하지 차원이 어떠니 영혼이 어떠니 초월자가 어떠니 하고 따질 일이 아닙니다. 나를 발견하고 둘 아닌 도리를 알게되면 그런 것은 묻지 않아도 절로 풀립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가 ‘주인공 당신밖에 할 수 없잖아!’ 하라고 했다해서 그게 기독교에서 하는 초월자 얘기와 뭐가 다르냐고 합니다. 내가 보기엔 처음에 기독교에서도, 아니 예수말씀이 원래는 그런게 아닌데 말씀을 편집하는 사람들이 잘못해서 예수가 ‘나만 믿어라!’ ‘하나님만 믿어라’한 걸로 되어버렸단 말입니다. 하지만 나를 믿어라 한 그 말은 ‘각자가 참 나를 믿어라’ ‘하나인 님을 믿어라’한 것이라고 봅니다. 가섭존자가 결집시에 아난존자를 들여놓지 않았던 것은 바로 잘못 편집이 될까 보아서 그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삐끗 한 마디만 잘못 편집해 놓아도 완전히 망치기 때문이지요. 저 염주에서 알이 하나만 빠져도 주르르 알이 다 흩어지듯이 글자 하나만 잘못되도 뜻이 달라진단 말입니다. 저 사람들은 편집을 잘못해서 스스로 증득하는 길로 가게하지 못하고 하나님 찾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진리 그대로 마음을 찾게 했습니다. 그래, 각자의 근본 마음자리를 믿으라는 게 어째서 초월자를 믿으라는 얘기와 비슷하다는 것입니까? 초월자라고 한다면 그건 밖에도 없고 안에도 없습니다. 오직 마음입니다. 불성을 믿고 불성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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