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스님께서는 ‘죽어야 보리라’ 하십니다. 거짓나가 죽어야 참나를 볼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그런데 무아라는 말은 거짓 자기가 없다는 것인지 아니면 참나라고 할 것도 없다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大行) 말로써하면 없다는 것은 공하다는 뜻입니다. 처사님은 모든 것을 고정되게 한소리만 듣고 사십니까? 생활하시는데 고정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두가 쉴사이 없이 돌아가니 이거다 하고 세울게 없고 세울게 없으니 무아요 공입니다. 그렇게 세울게 없기에 어떤 스님은 판치생모(板齒生毛)라고 했습니다. 어떤 모습일 때를 딱 집어서 ‘나’라고 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중생인 나는 있는 것 같더란 말입니다. 그러기에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것부터 알아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한 선사께 물었답니다. 도대체 부처란 무엇입니까? 했더니 그 선사가 해골을 하날 던져주며 ‘이놈아 이거다’ 하더랍니다. 그게 도시 무슨 뜻인가하여 몇해를 그 해골을 붙잡고 씨름을 했는데 하루는 해골이 말을 하더랍니다.’야 이놈아, 너도 나처럼 눈도 빼고 귀도 빼버리고 코도 빼고 혀도 빼고 몸뚱이도 없어야지.’ 이렇게 말입니다. 그 바람에 이 사람이 홀연히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곰곰 참구해보면 처사님도 느끼는 바가 있을 겝니다. 해골처럼 우리가 육근육진육식을 다 빼놓고 가면 무엇이 남겠습니까? 그냥 송장이고 말지요? 육신으로 송장같이 되어야 죽는게 아니고 나를 앞세운 관념의 벽을 깨는게 죽는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놓고가는 삶이라고 말합니다. 나다, 내것이다, 내가한다는 ‘나’ 중심의 의식작용을 다 놓고 주인공이 하는 것이라고 굳게 믿고 나아갈 때에 비로소 참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과거의 자기와 현재의 자기가 비로소 상봉하게 됩니다. 작년 콩씨와 올 콩씨가 둘이 아닌줄 알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