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스님께서 법문하시는 중에 이 공부를 하려거든 죽어야 한다! 첫째도 죽어야 하고 둘째도 죽어야 하고 셋째도 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늘 죽어야 한다, 죽어야 된다 하는데 죽으라는 말씀이 에고(ego)가 죽어야 한다는 말씀인줄 짐작하면서도 그게 잘 안됩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마음선원 본원으로 갑니다… ^^ 大行) 죽는게 그렇게 두렵던가요? 이게 말입니다. 난 죽고싶다, 죽고싶다 하는 분이 더 죽고 싶지 않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육신 죽으라는게 아니지요. 모든 것은 고정되게 머물러 있지 않으니까 ‘공하다’고 했고 그래서 ‘나’라는 관념을 몽땅 놓는다면, 놓는다는 그 의식까지도 말입니다만 그렇게 놓는다면 사랑할 건 사랑하고 발전시킬 건 시켜가면서 그대로 살아갈 수 있고 그대로 공부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게해서 완전히 나와 나가 계합할 때까지 놓고가라, 그것이 첫째 내가 죽고 둘째 더불어 죽고 일체와 둘아니게 나투도록 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죽지않고 나를 볼 도리는 없습니다. 그러니까 첫번 죽는 도리는 나를 버려 나를 얻는 소식이고 두번째 죽는 도리는 나와 더불어 일체를 버려서 일체를 얻는 소식이며 세번째 죽는 도리는 일체와 더불어 나투는 소식입니다. 공부하시는 여러분들이 만약 이 소식을 아신다면 일체가 나와 동등하여 둘이 아니고, 우주 삼라만상 삼천대천세계가 나의 도량이요 만물만생의 아픔이 내 아픔과 다르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말끝마다 일체를 놓고 맡기라, 주인공 자리에 몰록 놓고가라 하는 것은 바로 죽고 또 죽어라, 이쯤하면 됐겠지 하는 것도 없이 놓고 또 놓으라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참으로 복잡하고 말많고 탈많은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을 살아가면서 일일이 사량분별로 네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하고 사신다면 어느 천년에 나를 밝히고 불법의 맛을 알게 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말씀하신 것은 고에서 벗어나 자유인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내가 죽고 또 죽는 한마음의 인생살이에는 고가 없습니다. 고는 사라집니다. 그래야 이 세상을 살면서 마음법으로써 나도 건지고 일체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공부하시는 분들이 통밖으로 벗어나 통을 굴릴 수 있다면 앉은 자리에서 싸움도 말릴 수 있고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니 주인공-참 자기를 믿고 관념의 나로서는 죽고 또 죽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