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현행원으로 보리이루리

금강경을 공부할 때마다 번번이 보현행원품을 말씀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보현보살이 부처 님의 깨달음의 경계를 찬탄하면서 부처님의 한량없는 깨달음의 무진공덕 세계를 어떻게 하 면 이룩할 수 있느냐를 말씀하시며 열 가지를 설하신 것이 보현행원품입니다.

반야를 통해서 진리의 참모습이 드러나게 되니까 불가불 이제 진리의 참모습대로 사는 진리의 주인공, 진리로 사는 그 사람의 생활방식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금강경을 공부할 때는 항상 보현행원품을 공부했고, 보현행원품을 공부할 때는 반야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 우리 법회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원품에는 ‘이렇게 이렇게 해야 하느니라’하고 나와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은 실지 부처님 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는 이렇게 하겠습니다.’하는 다짐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심사가 아 니었던가 합니다.

‘보현행자의 서원’은 거기서 나온 것입니다. 아마 형제들도 잘 아시겠지만 보현행자의 서원은 반야에 의해서 드러난 거짓 없는 내 생명의 진실 그대로 사는 사람이 부처님 앞에서 ‘저 는 이러합니다. 이렇게 살겠습니다.’하고 부처님 앞에 자기 고백을 한 것이 서원의 격식이 된 것입니다. 이 서원은 저의 신앙을 토로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함께 읽자고 하기엔 송구 스럽습니다.

그러나 제가 근자에 다시 읽어 볼 적마다 우리 형제들이 우리의 믿음을 다시 다짐하고 우리 의 바탕을 다시 내 목소리로 드러내 보는 이런 계기로 삼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시간이 좀 없더라도 보현행자의 서원 서분만을 함께 읽어볼까 합니다.

그럼 같이 읽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은 끝없는 하늘이시고, 깊이 모를 바다이십니다. 생각할 수 없는 청정공덕을 햇살처럼 끊임없이 부어주십니다. 나의 마음, 나의 집안,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또한 온 겨레, 온 중생 가슴속에 한없이 고루 부어 주십니다.

온 중생, 온 세계, 온 우주는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혜속에 감싸여 있습니다. 부처님의 거룩하신 은혜는 나의 생명과 우리 국토 온 세계에 넘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은혜로운 공덕을 받고서 태어났으며, 은혜로운 공덕을 받아쓰면서 생활합니다.

온 중생은 모두가 일찍이 축복 받은 자이며, 일찍이 거룩한 사명을 안고 이 땅에 태어나서 거룩한 삶의 역사를 열어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거룩한 광명과 은혜로 살고 있으면서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자를 중생이라 하였습니다. 저들은 지혜의 눈이 없다 하기보다 착각을 일으켜 육체를 자기로 삼고, 듣고 보는 물질로써 세계를 삼으며, 거기서 얻은 생각으로 가치를 삼고, 그를 추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세계는 겹겹으로 장벽에 싸여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는 막혀 있으며, 중 생들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에 감겨 지냅니다.

이 모두가 미혹의 탓이며, 착각으로 말미암아 자기를 그릇 인정한 데에 기인합니다.

그렇지만 이 국토는 원래로 부처님 공덕이 넘쳐 있습니다.

설사, 중생들이 미혹해서 잘못 보고, 잘못 생각하고, 고통을 느끼더라도 실로 우리와 우리의 국토가 부처님의 광명국토임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거룩한 광명과 거룩한 공덕이 영원히 변함없이 이 세계를 감싸았고, 그 속에 온 중생이 끝 없는 은혜를 지닌 채 약여(躍如)합니다.

이 세상이 우리 눈에 어떻게 나타나 보이더라도, 이 마음에 어떻게 느껴지더라도, 저희들은 부처님의 무량 공덕장 세계를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온 세계 가득히 넘쳐 있는 거룩한 공덕을 결코 의심하지 않겠습니다. 거룩하신 대보살들과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거룩하신 마음속에 하나인 것을 믿사옵니다. 일체 중생의 본성이 불성이오므로 온갖 중생의 생명이 부처님의 공덕 생명임을 믿사오며, 중생들이 이 참 생명을 믿고 구김없이 씀으로써 한량없는 새로운 창조가 열리는 것을 굳게 믿사옵니다. 보현보살께서 말씀하신 10종행원은 부처님의 무량공덕을 우리의 현실위에 발휘하는 최상의 지혜행입니다.

행원을 실천하는 데서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사회 위에 생명의 참 가치가 구현되며, 우리 국토 위에 불국토의 공덕장엄이 구현됩니다. 보현행원은 부처님의 무량공덕세계를 여는 열쇠입니다. 열 가지 문은 하나로 통해 있습니다. 한 가지를 행하여도 부처님의 온전한 공덕은 넘쳐 나옵니다. 행원의 실천은 우리가 자기 생명의 문을 여는 일입니다. 나의 생명 가득히 부어져 있는 부처님 공덕을 발휘하는 거룩한 기술입니다.

나의 생명을 부처님 태양 속에 바로 세우는 일이며, 내 생명에 깃든 커다란 위력을 퍼내는 생명의 숨결이며, 박동(拍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행원에는 목적이 없습니다. 어떠한 공덕을 바라거나, 부처님의 은혜를 바라거나, 이웃이 알아주기를 바라거나, 내지 성불하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행원 자체가 목적입니다. 행원은 나의 생명의 체온이며 숨결인 까닭에 나는 나의 생명껏 행원으로 살고 기뻐하는 것 뿐입니다. 행원으로 나의 생명은 끝없는 힘을 발휘합니다.

출렁대는 바다의 영원과 무한성을 생명에 받으며 무가보(無價寶)가 흐르는 복덕의 대하(大河)가 생명에 부어 집니다. 나의 참 생명의 파동이 행원인 까닭에 나의 생명이 끝이 없고 영원하듯이 나의 행원도 끝이 없고 영원합니다.

허공계가 다하고, 중생계가 다하고, 중생의 업이 다하고, 중생의 번뇌가 다하더라도 나의 생 명 행원은 다함이 없습니다.

보현행원은 나의 영원한 생명의 노래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율동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 의 환희이며, 나의 영원한 생명의 위덕이며, 체온이며, 광휘이며, 그 세계입니다.

나는 이제 불보살님 전에 나의 생명 다 바쳐서 서원 합니다.

보현행원을 실천하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보리를 이루겠습니다. 보현행원으로 불국토를 성 취하겠습니다.

대자대비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이 서원을 증명하소서.
감사합니다. “보현행원을 남의 것으로 알지 않고 내 생명의 숨결로 심장의 박동으로 산다.

행원이 가지는 지혜와 자비가 내 생명 살아있는 이 체온의 표현이다.” 이런 말들을 저는 사방에 글도 쓰고 말도 하고 보현행자의 서원에도 그렇게 밝혔습니다.

천상천하에 내가 으뜸가는 사람이 다하고 누가 말할 때 바로 그 말은 우리 목소리가 되어서 내 생명에 깃든 이 거룩한 값을, 내 생명에 깃든 무한한 지혜의 빛을, 바로 자기의 생명으로 느끼면서 바로 그 말씀을 자기 절대 권위 가운데서 받아 들여가는 것처럼 보현행자의 서원은 정말 우리 모두의 자연스러운 훈훈함이고 서원이 되지 않겠는가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형제들 참 감사합니다.

올해 특별히 우리는 우리 생활에서, 또 나 자신에게서, 또 내가 서있는 우리 가정에서, 나를 둘러 싸고 있는 사회, 나를 둘러싸고 있는 우리 국토 위에서 경사스러움을 발견하고 기쁨을 발견하자고 했던 우리의 다짐은 보현행자의 서원이라고 하는 이 바탕에서 저절로 나오는 것 을 보았을 것입니다. 나와 더불어 온 국토가 원래 부처님의 공명에서 이루어진 까닭에 우 리는 지혜의 눈이 밝으면 밝을수록 더욱 경사스럽고 더욱 기쁜 일들을 발견해냅니다.

반야심경을 우리는 그동안 많이 공부해왔습니다만 반야심경을 읽어 갈수록 줄곧 이 세계를 드러내주는 데 부처님께서 초점을 맞추지 않았는가 하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우 리 이 땅, 우리가 숨쉬고 사는 국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과 모든 행적이 사실은 끝없 는 은혜로 가득찬 것인데 그것을 몰라보고 있다. 그것을 바르게 느끼고 보라. 무엇이 가렸는 가. 물체가 가렸다. 물체는 공하고 없는 것이다.

무엇이 막혔는가. 물질이 막혔다. 그러나 물 질은 실로 없는 것이다. 혹은 내 마음 가운데 있는 가치가, 내 마음의 감정의 구름이 막혀 있다. 그것은 내 마음에 있는 가치관이니 감정의 구름덩어리 다 떼어 버려라. 눈길을 돌려 볼 때 그것은 허망한 것이고 실로 없는 것인데 우리가 착각으로 인해서 도깨비가 숨어 있는 것처럼 매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마음의 눈을 돌려라.” 이렇게 함으로부터 우리 깊이에 있는 자기에게 눈을 돌리도록 자꾸 가르치십시다.

사실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끊임없는 현실의 풍파 이 물결 속에서 살아가면서 거기만 매여 있는 한에는 끝없는 고통의 바다입니다. 살아도 고(苦), 즐거워도 고(苦), 낙(樂)도 고 (苦), 몽땅 필경에는 고(苦), 죽음, 없어지는 것, 그것을 절감하고 아는 것이 인생인 듯 싶습 니다. 그러나 다행이 눈길을 돌려 볼 때 그런 속에서 사는 사람은 아직 부처님의 법도 더욱 이 반야의 지혜도 근처에 못간 미혹에 사로잡힌 눈이고, 나의 생명 내 심장에 뛰고 있는 내 생명의 참 알맹이를 바로 알 때 거기야말로 무한 자재의 위신력이 도사리고 있는 것입니다.

항상 찬 삭풍이 몰아 부치는 이런 거친 땅이 아니라 봄바람에 꽃이 피는 꽃동산을 보는 것 처럼 결국 반야의 눈에서 우리의 삶의 터전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야심경에 보면 ‘휘둘린 생각 멀리 떠나 구경열반이며’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휘둘린 생각 이라는 것은 필경 이 육체가 물질이다, 감각이다라는 그 유(有)의 세계, 있다고 하는 세계에 대한 인정, 집착이 휘둘린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 유(有), 있다, 물질이다, 이렇게 느끼고 감 정으로 받아들이고 이론으로 따지고 하는 것, 여기에다 자기를 내 쏟고 있는 한은 전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서부터의 탈피는 무엇이냐. 지혜의 눈으로써 바닥 깊은 곳을 보는 것이다. 깊은 자기 생명을 사무쳐 보는 것입니다.

사실 표현이 잘못된 것입니다마는 어쩌면 깊은 곳이 따로 없습니다. 바로 생명이 이 무한 공덕장 세계, 이것은 바로 깊이를 따질 것 없이 눈앞에 당장 실현되어 있는 것인데 그것을 보는 것입니다. 그것을 봄으로부터 나의 세계는 항상 봄바람이 불고 꽃이 피어 있고 평화가 넘쳐흐르는 반야의 세계가 나오는 것입니다.

光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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