禪이란 언제나 맑은 마음

숭산선사님께

이 모든 광대한 우주
텅 빈 바다, 모래사장, 몇 마일씩 뻗은 하늘에서
오직 나만이 어리둥절하네.

몇 시간째 해변을 거닐며
바보처럼 추구하며
진실(또는 그 무엇인가)을 찾으며

내 앞의 조개들과 모래
그리고 파도 소리도
놓치고 있네.

  • 큰스님께 올립니다

거사님께

편지 고맙습니다. 거사님과 거사님의 가족들도 안녕하십니까?

휴가를 얻어 가족과 해변에 다녀 오셨다구요. 멋지군요. 해변에서 정식 명상자세로 앉아있던 남자가 얼음처럼 차가운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 15분에서 20분 동안 있었다구요.

거사님은 이것이 진정한 공(空)인가, 또 선 수행자는 이러한 능력과 같은 것을 얻는 것으로 기대해야 마땅한가에 대해 물었습니다. 만일 거사님 마음속에 ‘나라는, 나의 것이라는, 나를 위한다’는 생각을 가졌다면 이것은 영웅심이라고 부릅니다.

불교에는 밀교(密敎)수행이라 불리는 어려운 수행법들이 있습니다. 이 수행자들은 많은 주문을 외우며 한마음〔一心〕이 되지요. 그 다음엔 얼음을 부수고 차가운 물 속에 10분이나 20분씩 들어가기도 합니다.

또는 주문을 외워 한마음이 된 뒤 펄펄 끓는 기름 속에서 목욕하거나, 송곳 판 위에 앉기도 하지요. 이 모든 것은 인내하는 마음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이러한 수행에 통달한 뒤에 이들은 더 높은 단계의 밀교로 올라갑니다.

이 모든 수행이 끝나면 이들은 신통한 힘까지 얻지요. 이런 것을 밀교수행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선이 아닙니다. 됐습니까?

선은 맑은 마음, 언제나 맑은 마음입니다. 맑은 마음이란 일상의 마음〔平常心〕이 진실하다는 뜻입니다. 차가운 물은 차갑고, 뜨거운 물은 뜨겁죠.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누군가가 ‘나는 어려운 수행을 경험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언제나 어려운 수행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를 자꾸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만들면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게 되며, 그것은 거사님에게 장애가 되어 거사님은 완전한 자유를 얻을 수 없게 됩니다.

아마도 거사님은 무엇인가에는 자유를 얻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완전한 자유는 아닙니다. 완벽한 자유가 무엇일까요? ‘나 – 나의 – 나를’을 품지 마세요. 그러면 그대로 보이고 들리고 할 것입니다. – 이제 모든 것이 완전합니다. 특별한 성질을 여읜 것이지요.

다음, 거사님이 아직 선(禪)에 대한 영감을 주는 펜을 찾지 못했다구요. 거사님이 그 펜을 찾으면 난 거사님을 30대 때리겠습니다.

거사님이 선의 펜을 만든다면, 거사님은 이미 펜을 잃어버린 것이니까요. 선의 펜을 만들지 말아요. 그러면 거사님은 이미 그것을 갖고 있는 거예요. 알았습니까?

다른 분들과 함께 참선을 하고 계시다구요. 좋습니다.

이번 하안거 결제에도 참석하겠다구요. 그것도 또한 좋습니다.

거사님은 또 이렇게 썼지요.

‘나는 여전히 앉아 있네. 왜?

할!

숲 속 바닥의 햇빛. 솔밭 위에

덮인 황금 무늬들.’

좋습니다. 이 말들은 다만 ‘이와 같음'(如是) 것입니다. ‘나는 여전히 앉아 있네’라고 말하면 이것은 양변이 없는 유일한 절대긍정을 뜻합니다.

‘나’는 이미 주체와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부처’라든가 ‘마음’ 혹은 ‘불법’등을 말했다면 거사님의 대답은 더 멋있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한 대답은 오직 ‘이와 같음'(如是)이 좋습니다. 그러나 한 요점의 질문에는 한 요점의 대답이 필요합니다. ‘내가 앉아 있네’의 바로 ‘이와같음’의 요점은 어떤 것일까요?

거사님의 시는 훌륭합니다.

나도 거사님에게 시 한편을 드립니다.

원래 아무 것도 없으나, 파도는 언제나
서로 말을 주고 받네.
원래 공(空)이지만, 언제나 바람과 나무는
서로 씨름하네.

햇빛은 색깔이 없으나,
모든 것은 저마다
좋아하는 색을 만드네.
너무너무 조용하네.

누군가 눈이 있어 당황하네.
눈이 없다면, 광대한 우주, 푸른 바다, 흰모래,
구름 한 점 없는 10마일
맑은 하늘의 10마일

태양은 서쪽에 지고 있는데
조개의 그림자는 점점 길어지네.

2000년 6월

崇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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