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재가불자가 술을 마시는 경우와 출가한 스님이 술을 마시는 경우에 대해 논하여 보자.
계를 이야기할 때는 언제나 재가신도와 출가한 승려를 구분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같은 하나의 계를 놓고 볼 때, 재가불자의 계는 가볍고 출가자의 계는 엄한 것이 상식이다. 출가자는 문자 그대로 세속을 떠나 부처님의 도량에 들어와서, 신도들의 공양을 받으며 오로지 수행생활에만 전념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자연히 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불음계의 경우에도 출가인은 일체의 음행을 금하였지만 재가인에게는 사음만을 금하였다. 불망어계의 경우에도 스스로 깨달은 성자라고 자처하는 대망어는 주로 출가자가 범하기 쉬운 금계로서 재가자는 이와 같은 허물을 거의 범하지 않고 있다.
재가신도들은 사업상 또는 부득이한 일이 있어 술을 마셔야 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할 때는 술을 즐겨 먹지 말고 취하도록 먹지 말 것이며, 남에게 함부로 권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술을 권하는 경우에도, 나쁜 마음으로가 아니라 좋은 마음으로 권하는 때도 있다. 서로 불화가 있고 다툼이 있는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해서, 또는 피로에 지치고 추위에 떠는 이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술을 준 것은 죄가 되지 않는다. 영하 10도 이하의 강추위 속에서 근무를 한다거나, 어떤 사정으로 얼어 죽게 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어 술를 주었다면 그것은 잘못보다 잘한 일로 볼 수가 있다.
또한 중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보면 대개 막걸리 등의 술을 참(站)으로 먹어야 피로도 풀리고 힘이 나는 모양인데, 그들에게 술을 권하였다 하여 허물이 되지는 않는 것이다. 또 직장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또는 악의가 아닌 일로 술을 권한 경우라면 계를 어긴 여부를 굳이 따질 필요가 없다. 그러나 나쁜 마음으로 남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범하였다면, 당연히 중죄를 범했다고 할 것이다.
특히 술을 마시고 권하는 허물은 한량이 없지만 만일 중생을 깨우치기 위해 함께 술을 마셨고 또 권한 것이라면 결코 죄가 될 수 없는 것이다.
피사익왕의 왕비인 말리(末利)부인이 부처님으로부터 계를 받은 뒤의 일이다. 어느 때 왕이 음식을 잘못 만든 조리사를 죽이려 하자, 왕비는 왕이 좋아하는 술상을 잘 차려 주연을 베풀고 서로 권하며 마음껏 술을 마셨다. 왕은 부인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다가 조리사 죽이는 일을 잊게 되었고, 이로 인해 조리사는 죽음을 면할 수 있게 되었다. 그 뒤 왕비가 부처님께 나아가 이 일을 여쭙고 참회하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와 같은 이유로 술을 마신 것은 큰 이익을 얻은 것이요, 계를 범한 것이 아니니.”
모름지기 재가불자가 술을 마실 때에도 남을 돕고 살리는 정신으로 먹지 않으면 안 된다. 타락을 위한 술이 아니라 살리고 돕는 술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재가불자의 불음주계는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다. 그런 출가스님의 불음주계는 매우 엄격하다.
이에 대해서는 ≪사분율 四分律≫에 기록된 불음주계의 제정동기를 살펴보면 잘 알 수가 있다.
지타국(支陀國)의 거상(巨商)인 카우삼비는 사가타(沙迦陀) 존자가 신통력으로 큰 독룡(毒龍)을 제압하는 것을 보고 감복하여 공양을 올렸다. 사가타 존자는 맛있는 음식과 술을 마음껏 먹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 사가타 존자는 술에 취해 얼마 가지 못하고 길에 쓰러져 먹은 것을 모두 토하였으며, 뭇 새들이 냄새를 맡고 어지러이 울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아시면서도 짐짓 아난에게 물으셨다.
“새들이 무엇 때문에 우느냐?”
이에 아난이 그 일의 전말을 말씀드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사가타 비구가 지금과 같으면 작은 용도 항복 시키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은 다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술 마시는 이에게는 열 가지 허물이 있다.
① 얼굴빛이 나빠지고 (顔色惡)
② 기운이 업어지며 (少力)
③ 사물을 제대로 볼 수가 없고 (眼視不明)
④ 성난 얼굴을 하기 쉽고 (現嗔恚相)
⑤ 있는 재산과 하던 사업을 그르치게 되며 (壞田法資産法)
⑥ 질병을 불러일으키고 (增致疾病)
⑦ 싸움과 소송을 좋아하게 되며 (益鬪訟)
⑧ 명예는 없어지고 나쁜 이름만 높아지며 (無名稱惡名流布)
⑨ 지혜가 없어지며 (智慧滅少)
⑩ 목숨을 마치고 나면 삼악도에 떨어진다 (身壞命終墮三惡道)
지금부터 나를 스승이라 하는 이는 초목이라도 술 속에 넣었던 것은 입에 넣지 말라.”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무수한 방편으로 사가타 비구를 꾸짓으신 뒤 여러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사가타 비구, 이 어리석은 사람은 가장 처음으로 이 계를 범하였다. 지금부터 비구들에게 계를 제정해 주어 열 구절의 이치를 모으고 바른 법이 오래도록 머무르게 하리니, 마땅히 계를 말하는 이는, ‘어떤 비구가 술을 마시면 바일제(波逸堤:다른 이에게 참회하지 않으면 지옥에 떨어지는 죄)이니라.’라고 하라….
그리고 범하지 않는 경우가 있느니, 병이 있어 다른 약으로는 고치지 못하므로 술에 약을 타거나 술을 종기에 바르는 것은 범하지 않는 것이니라. 또 처음 계를 제정하기 전이나 어리석고 미쳐서 마음이 어지럽고, 고통과 번뇌에 얽힌 때는 범한 것이 아니니라.”
불음주계를 제정하실 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 것처럼, 출가한 스님들은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스님들 중 일부는 음주를 허물로 생가하지 않고 취하도록 마시는 이들이 있다.
옛날 중국 남북조시대의 담현(曇顯) 스님은 삼장(三藏)을 해박하게 통달하여 지혜와 학문을 널리 떨쳤고, 대승경전에 의지하여 ≪보살장중경요급배천법문 菩薩藏衆經要及百千法門≫도 저술하였다.
스님은 도교의 도사들과 말술을 마시는 도력을 다투어 그들을 귀의시켰는데, 이로부터 중국에 불법이 크게 일어났다고 한다.
만일 누가 있어 담현 스님처럼 술을 독채로 마시고 오줌을 누어 능히 돌을 부숴뜨리며, 술과 고기를 먹으면서 ≪화엄경≫을 하룻밤 사이에 외울 수 있는 법력이 있으면 술을 마셨다고 하여 허물이 생길 일이 없다. 그러나 진정 그러한 능력이 없다면 그 해가 적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에 정통했던 중국의 홍찬 스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오늘날 미치광이 선객들이 있어 계율을 상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비방하면서 방자한 몸과 마음으로 밤낮없이 마구 마시나니, 그것을 어찌 귀신이나 축생이 먹는 것과 분별할 수 있으랴. 계를 소승이라고 비방하며 술을 마셔도 허물이 없다고 일컫는다면 끓는 똥 속의 구더기가 될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침내 지혜 없는 사람들이 따라서 하게 된다면 스스로도 눈 멀고 남도 눈멀게 하는 것이니, 죄를 얻어 과보를 받음이 어떠한지는 경에 밝힌 바와 같다. 어찌 두렵지 않으랴.
출가한 승려의 몸으로 감히 스스로가 갖춘 조그마한 도력을 빙자하여 계율을 무시하고 함부로 술을 마신다면, 마침내 그 허물이 한없이 커져 겉잡을 수 없는 악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되고 만다는 것을 잘 명심해야 할 것이다.
日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