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계이야기] 5. 불음주(不飮酒) – 불음주계는 차계(遮戒)이다

이와 같이 술을 먹지 못하도록 경계하였지만, 흔히들 술 마시는 것쯤이야 남의 물건을 도둑질하는 것도 아니고 남을 직접 해롭게 하는 것도 아니니 어떠냐고 한다.

실로 술 자체가 허물이 아니듯이, 술을 마시는 것이 곧 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동서고금의 모든 나라에서는 결코 음주 자체가 범죄 행위가 될 수 없다 하여 법으로 금하지 않았다. 다만 기우제(祈雨祭)를 거국적으로 실시하거나 특별한 사정을 시한부 금주령을 선포한 경우에만 음주를 제지하였던 것이다.

죄에는 성죄(性罪)가 있고 차죄(遮罪)가 있고, 계에도 성계(性戒)가 있고 차계(遮戒)가 있다. 예컨대 사람을 죽이거나 남의 재물을 훔치는 것은 직접적으로 남에게 피해를 입히는 행위이므로 이를 성계라 하고, 어떤 행위 자체가 곧 직접적인 죄라고는 할 수는 없지만 그대로 놓아두면 본질적인 죄를 범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금하는 것을 차계라고 한다.

예컨대 절벽 낭떠러지 근처에서 어린이들이 노는 것을 금하도록 한 것이나, 어린이들이 많이 노는 주택가의 길이 비록 넓은 차도라 하더라도 모든 차를 서행하도록 하는 것은 모두 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정한 것이다. 이것이 차계이다.

그리고 본질적인 죄를 성죄(性罪)라 하고, 성죄를 막기 위해 미리 제지하는 것을 범하거나 어떤 행위에 의해 본질적인 성죄를 유발시키는 잘못을 차죄(遮罪)라고 한다. 곧 성죄는 살생, 도둑질과 같은 그 행위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을 말하고, 차죄는 그 행위 자체가 죄는 아니지만 살생, 도둑질 등의 성죄를 유발시키는 죄를 가리킨다.

술은 사람의 마음을 혼미하게 만들고 우리의 근본 마음을 무명(無明)으로 덮어 지혜를 발현시키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본다면 술을 마시는 그 자체까지도 본질적인 죄가 되므로 성죄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음주 그 자체가 죄라고 하기보다는 술에 취하게 되면 살생, 투도, 음행, 망어의 성죄를 유발한다는 속성이 더 강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차죄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술을 먹는 것은 차죄이고 술을 먹지 말라고 경계를 하는 것은 차계이다. 이제 술을 마심으로 해서 살생ㆍ투도ㆍ음행ㆍ망어의 네 가지 죄를 일시에 저지른 실례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아득한 옛날 한 시골에 평소 마을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한 거사(居士)가 살고 있었다. 그는 재산도 있고 교양과 학식을 갖춘 사람이었으므로 부도덕한 행위를 할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대낮부터 술을 많이 마셔 거의 제정신을 가누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그때 마침 이웃집 닭 한 마리가 모이를 찾아 주위를 헤집고 다니다가 그의 집으로 들어와서 마당을 휘젓고 있었다. 그는 포동포동 살이 오른 암탉을 보자 식욕이 크게 동하여 생각할 여유도 없이 남의 닭을 잡아먹고 말았다. 이로 인해 그는 남의 닭을 도둑질한 허물을 짓게 되었고 또한 생명을 죽이는 더 큰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

닭고기를 안주 삼아 더 많은 술을 마시게 되자 그의 취기는 더욱 깊어졌다. 한편 이웃집 부인은 자기 집의 닭이 이웃집에 들어간 뒤 날이 저물도록 돌아오지 않자 수상하게 생각하여 그의 집을 찾아갔다.

“우리 집 닭이 댁으로 들어갔는데 보지 못했습니까?”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오.”

그는 완강하게 부인하였다. 이로써 거짓말까지 저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웃집 부인은 그가 닭고기를 먹는 것을 보고 의심이 생겨 발걸음을 옮길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껏 취한 거사의 눈에는 여인의 주저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는 동물적인 충동을 거세게 일으켜 부인을 강제로 겁탈하고 말았다. 마침내 사음을 저지른 것이다.

평소 계를 잘 지키던 불자요 마을의 지도자였던 그였지만, 불음주계를 어긴 것이 원인이 되어 마침내 살계ㆍ투도계ㆍ사음계ㆍ망어계를 모두 다 범하고 만 것이다. 만일 그 이웃집 남자 주인이 그 일을 알았다면 더욱 큰 살생이 벌어지고 악구(惡口)와 싸움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와 같이 술은 무서운 범죄를 일으키게 하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불법을 닦는 불자는 이 음주계가 비록 성계는 아니지만 미리 조심하여 먹지 말라고 한 것이다.

특히 인도는 더운 나라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면 빨리 취하게 되고, 또 술을 마시고 병이 걸리게 되면 쉽사리 죽기까지 한다. 따라서 우리와 같은 온대지방의 나라에서보다 더욱 철저하게 술을 마시지 말 것을 경계하고 있다.

日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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